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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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시속 50km로 밟아도 되지 않나요?” (직장인 박모씨)

31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속도 제한이 완화된다는 소식을 접한 직장인 박모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처럼 말했다. 박씨는 “스쿨존에서 속도를 위반해 사고라도 나면 벌금이 3000만원에 실형까지 인생이 끝날 정도"라며 “속도위반으로 단속에 걸리면 경찰이 책임을 져 줄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어 “경찰이 아이들 생명과 운전자 인생이 걸린 문제를 가지고 하루 만에 말을 바꾸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경찰이 스쿨존 속도 제한을 전국적으로 완화하겠다고 발표한 뒤 이를 하루 만에 번복하면서 전국의 운전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시민 안전과 직결된 교통 정책을 발표하면서 시행 장소와 적용 시간 등 구체적인 내용조차 담지 않으면서다. 일부 학부모 의견만을 수렴했고 지자체와 협의 과정은 없었다. 경찰이 본인들의 치적을 홍보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쿨존 시간제 속도제한은 어린이 보행자가 적은 밤 스쿨존의 제한 속도를 시속 30km에서 50km로 완화하는 내용이다. 지난해부터 서울 광운초와 인천 부원·미산·부일·부내초, 광주 송원초, 대전 대덕초, 경기 이천 증포초 등에서 시행 중이다. 스쿨존에서 13세 미만 어린이를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하면 ‘3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상해를 입힐 경우 1~15년 이하 징역 또는 500~30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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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지난 29일 구체적 내용 없이 오해의 소지가 충분한 보도자료를 경찰이 배포하면서 시작됐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윤희근 청장)은 다음달 1일부터 어린이보호구역 속도규제를 시간대별로 달리 운영하는 시간제 속도제한을 본격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속도를 완화하는 구체적인 스쿨존 지역은 밝히지 않았다. 운영 시간대도 지역 실정에 따라 조절한다는 모호한 답을 내놓았다. 당시 경찰청 관계자는 ”다음달 1일부터 전국 1만6576개 스쿨존의 속도 제한 규제를 시간대별로 다르게 적용해 운영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뒤늦게 “전국 시행이 아니라 시범 운영하는 8곳에서만 시간제 속도제한을 적용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8곳은 지난해부터 이미 제한 속도가 완화된 곳으로 이번 경찰의 발표로 바뀌는 것은 없다. 경찰 해명을 뒤늦게 접한 시민들은 “전국의 스쿨존에서 속도가 완화되는 줄 알았다"며 혼란한 모습이었다. 직장인 김모씨는 “퇴근길 스쿨존만 3곳을 지나친다"며 “내일부터 귀가시간이 줄어들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마터면 범죄자가 될 뻔했다"고 말했다.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없어

스쿨존 속도 완화는 아이들의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기 때문에 지자체와 학교, 학부모 등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수다. 경찰은 학부모와 학교 관계자 400명의 의견만 수렴했다. 전국 스쿨존은 1만6576곳이다. 초등학교는 6285개로 초등학생은 260만여명에 달한다. 초등교사노조 관계자는 “스쿨존 제한 속도를 완화한다는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처음 알았다"며 “초등교사 의견을 수렴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지자체 협의 과정도 없었다. 경찰이 스쿨존 제한 속도를 완화하기 위해선 지자체와 협의해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시행 장소와 시간대 등을 논의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찰과 스쿨존 속도 제한 완화를 최근에 논의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인천시의 일부 초등학교는 지난해부터 시간제 속도제한을 시범 운영 중인데 이곳을 내일부터 정식 운영한다는 것과 관련해서도 들은 바가 없다"고 전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스쿨존 속도 완화는 운전자와 학부모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힌 민감한 정책”이라며 “국민 생명이 직결된 정책인 만큼 경찰이 공식 발표를 하기 전에 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하고 전문가들 의견을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