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빚더미 앉은 신생아…미성년자 ‘빚 대물림’ 끊으려면
출산중 사망한 친모 빚 5000만원 대물림
미성년자, 상속포기·한정승인 신청해야
신생아는 친권자나 후견인 있어야 가능
작년 미성년자 빚 대물림 방지 개정안 통과


지난해 11월 태어난 A양은 출산 중에 사망한 친모가 남긴 빚 5000만원을 태어나자마자 상속받게 됐다. A양의 생부는 출산 전부터 연락이 끊겼고, 출산 당시 친모와 혼인 관계였던 법적 친부마저 "내 자식이 아니다"라며 제기한 친생부인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남이 됐기 때문이다. 신생아인 A양은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것도 모자라 영문도 모른 채 수천만원의 빚더미에 앉았다. 그 탓에 입양 절차를 밟기조차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A양 외에도 부모 빚을 대물림받는 아이들의 사례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미성년자 시절엔 빚이 있는지조차 몰랐다가 성인이 돼 월급 통장이 압류된 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미성년자가 빚을 대물림받지 않으려면 상속 포기, 한정승인 등을 신청해야 한다. 현행법상 신생아처럼 상속인에게 법률 행위 능력이 없을 경우 친권자 또는 후견인을 통해 가정법원에 상속 포기를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는 경우 이마저도 어려울 수 있다. 부모 빚을 대물림받는 미성년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보호시설 직원이 후견인 자처

법조계에 따르면 친모 B씨는 작년 11월 중순 A양을 낳다가 뇌사 상태가 됐고, 약 3주 만에 사망했다. A양은 친모의 남편인 C씨가 아닌 상간남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었다. B씨는 사망 당시 C씨와 이혼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법률상 A양은 출생 당시 친모와 혼인 관계에 있는 남편 C씨의 자식으로 추정된다. 생부가 따로 있더라도 법적으로는 C씨를 A양의 친부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A양이 태어난 산부인과 측은 C씨에게 연락해 "아이를 데려가라"고 했지만 C씨는 "친자가 아니다"며 거부했다. 이에 산부인과 측은 작년 12월 28일 C씨를 아동 유기로 신고했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는 C씨의 주장대로 '친자 불일치'로 확인됐다. A양은 결국 지역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졌다.
태어나자마자 빚더미 앉은 신생아…미성년자 ‘빚 대물림’ 끊으려면
또 다른 문제는 친모 B씨가 남긴 채무였다. B씨는 대부업체 채무 2800만원을 비롯해 5000만원에 달하는 빚을 갚지 않은 채 사망했다. C씨가 청주지법에 제기한 친생부인 소송이 지난 5월 인용되면서 C씨와 A양은 법적으로 남이 됐다. A양의 생부도 계속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입양 절차 지연 등을 우려한 지자체는 출생신고를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직권으로 A양의 출생을 등록했다. 결국 모친이 남긴 5000만원의 빚은 A양의 몫이 됐다.

이 같은 사정을 알게 된 지역 아동보호시설 관계자가 A양의 후견인으로 나섰다. 후견인은 A양을 대리해 청주지법에 상속 포기 소송을 제기해 최근 승소했다. 빚에서 벗어난 A양은 현재 지자체 등의 도움을 받아 입양 절차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성년자 빚 대물림 방지법 시행

대법원에 따르면 2016년부터 5년간 미성년자 80명이 원치 않는 채무 상속 등을 이유로 파산신청을 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파산하는 미성년자가 나온 셈이다. 미성년자들은 자신에게 빚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알더라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법에 따르면 상속인은 상속개시가 있음을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안에 관할 가정법원에서 상속포기를 신고할 수 있다. 상속인이 신생아와 같이 제한능력자인 경우도 그의 친권자 또는 후견인이 상속이 개시된 것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신고하면 된다. 물려받은 재산으로만 빚을 갚도록 하는 '한정승인'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자마자 빚더미 앉은 신생아…미성년자 ‘빚 대물림’ 끊으려면
상속개시가 있음을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을 넘길 경우에는 '특별한정승인'으로만 상속을 포기할 수 있다. 특별한정승인은 상속인이 채무가 재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 이를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내에 한정승인을 신고하는 제도다.

'미성년자 빚 대물림'을 막기 위한 법 개정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국회는 작년 11월 부모 빚을 물려받게 된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후 상속재산을 넘는 빚을 물려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민법 일부 개정안(미성년자 빚 대물림 방지법)을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미성년자 시절 상속 포기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순승인'으로 간주돼 부모의 빚을 떠안았더라도, 성년이 됐을 때 스스로 상속을 포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이 개정안은 작년 12월 공포·시행됐기 때문에 개정안 시행 이후 상속부터 적용된다. 다만 시행일 기준 19세 미만인 미성년자의 경우엔 예외적으로 소급 적용할 수 있다. 상속재산보다 상속채무가 많다는 사실을 몰랐던 경우도 예외로 인정된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