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와 블루스 넘나든 커트 엘링, '클래스'를 증명하다 [리뷰]
"폼(Form)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Class)는 영원하다"

영국 명문 축구단 리버풀 FC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생클리가 남긴 명언이다. 전설적인 선수는 노장이 되었더라도 그 재능이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축구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설적인 재즈 보컬 커트 엘링(55)도 클래스가 남다른 재즈 '선수'라는 것을 18일 입증했다.

엘링은 이날 재즈의 모든 것을 들려줬다.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서 열린 콘서트 '현대카드 큐레이티드 87-슈퍼블루 커트 엘링&찰리 헌터'를 통해서다.

엘링은 미국 기타리스트 찰리 헌터와 프로젝트 밴드 '슈퍼 블루'를 2021년 결성한 뒤 이달 2집 발매를 기념한 월드 투어의 일환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날 무대에는 케니 뱅크스 주니어(피아노)와 마커스 피니(드럼)이 함께했다.

엘링은 현존하는 최고의 재즈 보컬로 손꼽힌다. 그래미어워드 재즈보컬 부문을 2회 수상했고, 재즈 전문 매체 다운비트의 평론가 투표에서 2000년부터 14회 연속 '올해의 남성 보컬' 1위를 차지했다. 소울부터 펑크, 정통 재즈를 넘나드는 음색이 돋보인다. BTS의 멤버 뷔를 비롯해 리듬앤블루스(R&B) 가수 크러쉬가 엘링에게 존경을 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7년 이후 6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엘링은 5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엘링은 남성 성악가의 바리톤처럼 굵고 묵직한 저음을 내더니 이내 여성 음역으로 스캣(재즈에서 목소리로 가사 없이 연주하듯 음을 내는 창법)을 선보였다. 탁월한 변주에 관객들은 환호했다. 톡톡 튀는 펑크부터 중후한 블루스까지 리듬도 자유롭게 탔다.

첫 등장부터 남달랐다. 멀끔한 정장 차림에 행커치프를 꽂고 나타난 엘링은 이내 스캣으로 관객석을 압도했다. 노래를 부르는 중간 선보이는 애드리브에선 엘링의 천재적인 면모가 드러났다. 20세기 최고의 소울 보컬로 꼽히는 제임스 브라운이 연상될 정도였다.

스캣은 황홀했다. 최고의 재즈 보컬 알 재로가 대표곡 '스페인'에서 선보였던 것처럼 리듬을 능수능란하게 갖고 놀았다. 입에 모터를 장착한 듯 빠른 속도로 스캣을 내뱉었다. 공연 중반부 드러머와 서로 싸우듯 솔로 연주를 주고받는 장면은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엘링은 블루스를 부를 때 마치 프랭크 시나트라 같았다. 시나트라는 20세기초를 섭렵한 재즈 보컬로 '마이 웨이'란 곡으로 유명하다. 엘링은 시나트라처럼 중후한 저음을 뽐내며 관객들을 현혹했다. 공연장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꿔놨다. 30여년의 공연 내공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모든 변주가 순식간에 이뤄졌다. 공연의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의도였다. 박자를 빠르게 타면서도 매끄럽게 곡의 콘셉트를 바꿨다. 순식간에 활공하듯 음역대를 순식간에 올려도 중후한 음색은 여전했다. 마치 롤스로이스가 레이싱 대회 포뮬러원(F1)에 출전해 질주하듯 보였다.

엘링은 이날 100분 가까이 펼쳐진 공연을 오로지 노래만으로 채웠다. 밴드 멤버를 소개할 때도 스캣을 곁들였다. 단 한 순간도 '스캣맨'이 아닌 적이 없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공연 흐름은 박진감 있게 흘러갔다. 일분일초가 아쉬울 정도였다.

이날 무대의 가장 큰 미덕은 화합이었다. 밴드 멤버들은 엘링의 현란한 보컬에 굴하지 않는 솔로 연주를 선보였다. 찰리 헌터는 베이스와 기타가 결합된 6줄짜리 '하이브리드 기타'를 연주했다. 상단에 달린 두 줄을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튕기며 베이스 연주를 하는 동시에 나머지 손가락과 왼손으로 기타 연주를 들려준 것이다. 묘기에 가까운 연주였다.
펑크와 블루스 넘나든 커트 엘링, '클래스'를 증명하다 [리뷰]
피아노를 맡은 케니 뱅크스 주니어는 건반 두 대를 자유자재로 연주했다. 엘링의 스캣의 멜로디를 따라 치는 연주도 탁월했다. 드러머 마커스 피니는 헤비메탈 밴드처럼 광란의 솔로를 펼치다 블루스 리듬에 맞는 박자감을 드러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