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경에 이탈리아어 가사의 묘한 조합… 테너 이범주의 묵직한 아리아
이동형 무대로 꽉 채운 연출…예술의전당 오페라 '투란도트'
"수수께끼는 셋, 목숨은 하나!"
푸치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오페라 '투란도트'는 얼음공주 투란도트에 반한 칼라프 왕자가 목숨을 걸고 세 개의 수수께끼를 푸는 비교적 단순한 서사의 작품이다.

대신 이야기를 풀어가는 무대는 왕족의 화려함과 등장인물 '핑', '팡', '퐁'의 익살스러움, 군중의 합창 등으로 다채로운 매력을 뽐낸다.

지난 1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투란도트' 역시 작품이 품고 있는 매력을 무대 위에 한껏 쏟아냈다.

이 작품은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2019년에 이어 4년 만에 다시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려졌다.

1천석 규모의 CJ토월극장은 2천200석 규모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보다 규모는 작지만, 위아래로 움직이는 이동형 무대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여러 개의 이동형 무대가 때로는 천장에 가까운 높이에, 때로는 천장과 바닥 중간 높이 정도에 놓이며 위아래로 층을 만들어냈다.

이런 수직적인 구도는 등장인물의 신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효과도 있었다.

투란도트 공주와 알툼 황제는 위쪽 무대에, 타타르왕국에서 추방된 티무르 왕과 칼라프 왕자, 노예 류는 아래쪽 무대에서 노래하며 신분의 차이를 보여줬다.

극 후반에는 투란도트 공주가 서 있던 이동형 무대가 서서히 아래로 움직여 칼라프가 있는 무대에 닿고, 두 사람은 비로소 마주 서 사랑의 아리아를 부른다.

알툼 황제가 가장 위에, 대신들이 중간 위치에, 군중들이 아래 무대에 서서 공간을 꽉 채우며 장엄한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이동형 무대로 꽉 채운 연출…예술의전당 오페라 '투란도트'
또 '투란도트'는 중국을 배경으로 삼은 이탈리아 작품이란 점에서 묘한 분위기로 관객들을 끌어당겼다.

무대에 선 성악가들은 중국풍 의상을 입고, 작품의 원어인 이탈리아어로 아리아를 부른다.

투란도트 공주의 테마에는 중국 민요인 모리화가, 알툼 황제가 등장할 때는 청나라 국가가 사용되는 등 서양 오페라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운 동양 음악이 곳곳에 녹아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더한다.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 색상이 주로 쓰인 무대 벽과 조명, 의상도 '투란도트'만의 분위기를 잘 보여줬다.

2부를 연 칼라프의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Nessun dorma)'는 이 작품의 음악적 진가를 드러내는 곡이다.

워낙 유명해서 오페라를 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몇 소절만 들으면 알 만한 곡으로, 흔히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제목으로 잘못 알려진 아리아다.

이날 칼라프로 처음 데뷔한 테너 이범주는 묵직하게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그의 아리아에서는 투란도트 공주의 사랑을 얻겠다는 단호하고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칼라프를 사랑하는 노예 류 역을 맡은 소프라노 김신혜는 단연 돋보였다.

류는 이 작품에서 투란도트 공주 못지않게 주목받는 비련의 여주인공이다.

김신혜는 1막 '주인님, 제 말을 들어주세요(Signore, ascolta)'에서부터 애절함을 한껏 끌어내며 3막까지 감정을 잘 이어 갔다.

군중과 어린 신하들로 무대에 선 노이 오페라 코러스와 CBS소년소녀합창단의 합창은 매끄러웠다.

다만, 투란도트 공주와 군중이 함께 부르는 아리아에서는 투란도트의 목소리가 묻혀 아쉬움이 남았다.

연출적으로는 알툼 황제를 칭송하는 짤막한 합창이 극의 흐름과 무관하게 자주 나오는 경향이 있었다.

공연은 오는 20일까지.
이동형 무대로 꽉 채운 연출…예술의전당 오페라 '투란도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