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가 판사 재직 시절 SNS에 정치성향이 반영된 글을 올린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채널A 제공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가 판사 재직 시절 SNS에 정치성향이 반영된 글을 올린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채널A 제공
최근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사가 편향성 논란에 휘말렸다.

현직 판사 신분으로 선거 직후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는 글을 올린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박병곤(38)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지난 10일 사자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 의원에게 검찰의 구형인 벌금 500만원보다 높은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정 의원은 2017년 9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씨와 아들이 박연차 씨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권씨는 가출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적어 유족에게 고소당했다.

검찰은 고소 5년 만인 지난해 9월 정 의원을 벌금 500만원에 약식 기소했으나 법원이 사건을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재판부는 "유력 정치인인 피고인의 글 내용은 거짓으로, 진실이라 믿을 만한 합당한 근거도 없었다"며 "악의적이거나 매우 경솔한 공격에 해당하고 그 맥락이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실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거칠고 단정적인 표현의 글로 노 전 대통령 부부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당시 노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인물이라 보기 어려웠으며, 공적 관심사나 정부 정책 결정과 관련된 사항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명예훼손 사건에는 통상 벌금형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데 징역형이 나오자 담당 판사의 정치 성향이 반영된 판결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박 판사가 고교·대학 재학 때부터 판사 임용 후까지 쓴 현 여권을 비판하고 야권을 옹호하는 글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박 판사는 고3 때인 지난 2003년 10월 한 인터넷 사이트에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고 싶으면 불법 자금으로 국회의원을 해 처먹은 대다수의 의원이 먼저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다”는 글을 올렸다.

박 판사는 2004년 3월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석하고 난 뒤 “전·의경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천대 만대 국회의원 해먹기 위해서 대통령을 탄핵한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한나라당 녀석들 때문"이라는 글을 썼다.

2004년 초 박 판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한겨레신문에 기고해 좌파의 존재를 알리고,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인 ‘법조계의 적화를 꾀하라’는 지하당의 명령을 받아서 OO대학교 법과대학에 침투해 예비 법조인들의 좌경화를 선동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2004년 2월 다른 블로그 글에서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의 전신)에서는 나를 ‘(수원) 영통 지역 최연소 당원’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던 지난해 3월 10일에는 '이틀 정도 울분을 터트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포기하지 않고 자꾸 두드리면 언젠가 세상은 바뀐다'는 말도 적었다.

재작년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의 패배가 결정된 다음 날 중국 드라마 캡쳐본을 여러 장 올리며 '승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고 했다.

판사라 해도 SNS에 개인 의견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법관윤리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는 글을 올리지 않도록 권고된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는 "SNS상에서 사회적·정치적 의견 표명을 하는 경우 자기 절제와 균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품위를 유지해야 하고,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할 수 있는 외관을 만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권고 규정인 만큼 안 지키더라도 징계할 근거가 없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지난 13일 논평을 통해 "이번 징역 6월의 판결은, 결론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판사로서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로서, 또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정치적 견해를 그대로 쏟아낸,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판결"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로서 중립적인 판결을 내리기 어려웠다면, 박 판사 스스로 재판을 회피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또한 입장문을 내고 "최근 현직 국회의원과 관련된 1심 판결 선고 이후, 해당 판결과 재판장에 대한 과도한 비난이 제기되는 상황에 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판결에 대한 분석과 비판적 평가는 언제나 있을 수 있지만, 이를 넘어 담당 재판장에 대한 과도한 인신공격성 비난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박 판사는 ‘정진석 사건’ 선고를 한 다음 날인 지난 11일부터 휴가를 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15일 오후 3시 30분쯤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