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다른 해석·정책, 진정한 평화 위협…집단 기억 재검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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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정오, 많은 사람이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잡음이 뒤섞인 방송에서 흘러나온 건 일왕 히로히토(裕仁·1901∼1989)의 목소리. 이른바 '옥음방송'(玉音放送)이었다.
어렵고 모호한 어휘를 쓴 탓에 일본인조차 그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나, 메시지는 분명했다.
무조건 항복, 약 4년간 이어진 태평양전쟁의 끝이었다.
세계사에 하나의 변곡점이 된 8월 15일의 역사는 어떻게 기억될까.
실제로 남·북한과 중국, 일본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8월 15일을 기념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된 '광복'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다.
정부는 1949년 10월 1일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년 8월 15일을 '광복절'로 명명하고 국경일로 지정해 전국적으로 경축 행사를 거행했다.
남북한 모두 일제로부터 벗어났다는 점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북한에서는 '광복절'이라 부르지 않고 '조국 해방의 날' 또는 '조국해방기념일'이라 부르며, 김일성 주석의 항일 투쟁이 해방을 끌어냈다고 칭송한다.
북한 대남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14일 "조국 해방의 은인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라고 강조했고, 대외선전매체 '조선의오늘'은 김일성의 항일 운동과 성과를 선전한 바 있다.
조 명예교수는 "전쟁의 극복 또는 승리 주체 설정, 광복의 의미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며 "상이한 집단 기억의 결과로 발생한 간극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짚었다.
대만은 9월 3일을 '군인절'로 지정해 항전 승리기념일이자 그 승리를 통해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날로 여긴다.
중국은 1949년 건국 이후부터 8월 15일을 승전기념일로 기념했으며, 2014년부터는 기념행사의 날짜를 9월 3일로 바꿔 국가기념일인 '전승절'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일본은 어떠할까.
일본 정부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8월 15일을 '전몰자를 추도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날'로 정하고 전쟁터에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도 행사를 열고 있다.
조 명예교수는 각국 사례를 설명하며 '동일한 사건, 상이한 기억의 현장'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특히 한·중·일 3국의 인식 차이에 대해 "각국의 현대사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며 "각기 다른 해석을 무조건 깎아내리거나 거부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종결에 대한 각국의 각기 다른 해석과 그 해석에 따른 현실 정책은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조 명예교수는 "각국의 집단 기억을 다시금 검토해 보는 시도가 요청된다"며 "나날이 변모하는 사회에서 동아시아 각국은 역사를 바로 보려는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