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은 지난해 탄소 배출량이 전년 대비 12% 줄었다. 석유화학 업황 악화로 에틸렌 공장 가동률이 2021년 94%에서 지난해 86%로 곤두박질친 영향이 크다. 업황이 좋았던 2021년엔 탄소 배출량이 전년 대비 26.6% 급증했는데 업황이 나빠지자 배출량이 줄어든 것이다.

국내 탄소 배출량 1위 기업인 포스코도 지난해 배출량이 전년 대비 829만8291t(10.6%) 줄었다.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로 포항제철소가 침수돼 3개월간 가동이 전면 중단된 결과다.

지난해 산업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년 대비 6.2%나 급감했지만 이는 상당 부분 불황, 자연재해 같은 악재가 겹친 데 따른 ‘착시효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다.
포스코는 지난해 태풍 힌남노에 따른 피해로 포항제철소 제2열연공장 가동을 100일간 중단했다가 재가동했다.  한경DB
포스코는 지난해 태풍 힌남노에 따른 피해로 포항제철소 제2열연공장 가동을 100일간 중단했다가 재가동했다. 한경DB

탄소 배출 감소는 포스코 침수 ‘덕’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잠정치)은 6억5450만t으로 전년(6억7810만t) 대비 2360만t(3.5%) 감소했다. 부문별로 보면 발전을 포함한 전환 부문이 4.3% 감소(2021년 2억2370만t→지난해 2억1390만t)하고, 산업 부문은 6.2% 감소(2억6210만t→2억4580만t)했다. 반면 건물 부문은 3.9%, 농축산 부문은 1.0% 증가했다.

산업 부문에서 탄소 배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일시적 요인이 크다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실제 한국경제신문이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입수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포스코가 줄인 탄소 배출량 829만8291t은 산업 부문 감소폭 1630만t의 51%에 달한다. 국내 전체 탄소 배출 감소폭인 2360만t과 비교해도 포스코가 차지하는 몫이 35%에 이른다. 이는 포스코의 감축 노력 외에 지난해 9월 영남권을 강타한 태풍 힌남노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당시 침수로 포스코 주력 공장인 포항제철소는 3개월간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석유화학 공장이 불황의 늪에 빠진 점도 탄소 배출 감소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탄소 배출량이 급감한 대한유화(전년 대비 -23.6%), HD현대오일뱅크(-14.1%), 롯데케미칼(-12.0%), 여천NCC(-8.9%) 등은 석유화학업종에 속한다. 석유화학업계는 지난해 공급 과잉 해소를 위해 공장 가동을 줄였다.

디스플레이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LG디스플레이는 LCD(액정표시장치) 수요 부진으로 기존에 100% 풀가동한 구미공장과 파주공장 가동률을 지난해 96%대로 낮췄다. 지난해 이 회사의 탄소 배출량은 전년 대비 19.7% 줄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지난해 탄소 배출량이 전년 대비 8.5% 줄었다.

“감축기술 조기 상용화 어려워”

반면 지난해 업황이 좋았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년 대비 탄소 배출량이 각각 3.0%와 10.1% 늘었다. 제조업 중심인 국내 산업 특성상 업황이 나쁘지 않으면 탄소 배출을 줄이기 힘든 게 현실이다.

문제는 기업들이 탄소 배출을 지속적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사회에 2030년까지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지난 3월 시행된 탄소중립기본법에도 못박았다. 한국은 2018년 7억2760만t의 탄소를 배출했는데 2030년까지 배출량을 4억3660만t으로 줄여야 한다. 앞으로 7년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올해부터 매년 4.9%를 감축해야 한다. 감축 여건이 한국보다 훨씬 좋은 유럽연합(EU)의 연평균 감축률(1.98%)보다 부담이 훨씬 크다.

기업들 사이에선 “공장 가동을 줄이거나 불황이 닥쳐야 탄소 배출량이 감소하는 탄소중립 딜레마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을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해법 중 하나로 꼽고 있다. 하지만 비용과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2030년까지 CCUS 기술을 상용화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박대수 의원은 “탄소 감축이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규제 개선과 정책 마련이 적극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민/곽용희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