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년 만에 '평화의 뱃길' 뚫고 온 조선통신사선 재현선에 관심
1.8㎞ 행진에 시민·관광객 열띤 환호…"한일 우호 협력 더 나아갔으면"
"조선통신사 환영해요"…찜통더위에도 박수로 환영한 日 시민들
항구에 정박 중이던 배 앞으로 노란 옷에, 노란 모자까지 갖춰 쓴 취타대가 하나둘 모여들었다.

태평소, 장구, 나각(螺角·소라) 등 악기를 든 이들은 배 양쪽으로 줄을 맞춰 섰다.

이윽고 나온 울려 퍼진 음악은 '무령지곡'(武寧之曲). 조선시대 왕과 관리들의 행차에 뒤따르던 선율이 나오자 배에서 정사(正使)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신의 우두머리인 그는 군중을 한번 둘러본 뒤, 배에서 내려 천천히 가마에 올랐다.

"조선통신사 환영해요"…찜통더위에도 박수로 환영한 日 시민들
한낮 온도가 32도에 육박할 정도로 찌는 듯한 더위 속에도 정사는 손을 흔들며 환히 웃었다.

조선 정부가 일본에 보낸 '평화의 사절' 통신사의 재현이었다.

6일 오후 일본 쓰시마(對馬·대마도) 이즈하라(嚴原)항 부근은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 참가자들과 이들을 환영하는 인파로 가득했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들어선 일본 에도(江戶) 막부 때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년간 조선에서 일본으로 12차례 파견된 외교사절단을 뜻한다.

"조선통신사 환영해요"…찜통더위에도 박수로 환영한 日 시민들
한일 관계와 코로나19 상황 속에 올해는 약 4년 만에 재현 행사가 다시 열리게 됐다.

이번 축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참가자는 조선통신사가 타고 온 배 그 자체였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2018년 재현한 배는 5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바다 건너 일본까지 올 수 있었다.

마지막 행차 이후 약 212년 만에 다시 연 바닷길이었다.

통신사선 재현에 참여한 홍순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원래는 가네이시 성터에서 항구 쪽으로 향하는데, 올해는 배가 들어오면서 행진 경로도 달라졌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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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에 참여한 300여 명은 뜨거운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환한 미소를 보였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 참여했다는 키하라 히토미 씨와 하시모토 마이카 씨는 "땀이 주르륵 흐를 만큼 덥긴 하지만 한복을 입고 이렇게 행렬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며 웃었다.

한국과 일본의 전통 복장을 갖춰 입은 행렬은 약 1.8㎞ 구간을 천천히 걸으며 축제 분위기를 띄웠다.

한국 취타대의 절도 있는 움직임에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고, 사물놀이패의 공연에는 함께 어깨를 들썩였다.

공연으로 행진이 지연되자 축제 관계자가 '이제 갑시다'고 외치기도 했다.

"조선통신사 환영해요"…찜통더위에도 박수로 환영한 日 시민들
왕이 국가의 이름으로 보내는 외교 문서인 국서(國書)를 전달하기 위해 쓰시마박물관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관광객과 현지 주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환영 인사를 건넸다.

정사 역할을 맡은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조선통신사선이 약 212년 만에 쓰시마로 들어왔다는 것은 역사를 잇는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한일 관계가 개선 국면으로 서서히 들어가는 가운데 정사로 참여할 수 있어 뜻깊다"며 "이번 축제로 양국 간 우호 협력 관계가 더욱 힘을 얻고 발전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조선통신사 환영해요"…찜통더위에도 박수로 환영한 日 시민들
이틀간 열린 이번 축제에서 조선통신사선 재현선은 큰 관심을 받았다.

이날 오전 배에서 열리는 '선상 박물관' 행사는 일찌감치 참석자가 마감돼 남는 자리가 없었다.

회당 70명씩 총 3차례 열린 행사는 추첨을 통해 현지 주민을 대상으로 참석자를 정했다고 한다.

이들은 배를 재현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곳곳을 신기하다는 듯 둘러봤다.

'문양이 독특하다'며 한참 동안 단청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쓰시마시 주민인 코니시 토시노리 씨는 "많은 사람이 며칠 전부터 배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며 "이 배가 한일 교류에 있어서 또 하나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선통신사 환영해요"…찜통더위에도 박수로 환영한 日 시민들
마지막으로 열린 행사 공연은 예정 시간을 15분이나 넘겨 끝나기도 했다.

지난 5일 배를 탔다는 코니시 씨는 "하선할 때 취타대가 한국의 전통 악기로 생일 축하곡을 연주해주고고 주변 사람들이 함께 축하해줘 잊을 수 없는 생일이 됐다"고 기뻐했다.

이번 축제를 준비해 온 관계자들은 앞으로 한일 양국의 교류가 늘어나길 바랐다.

전날에는 부산과 쓰시마에 있는 조선통신사 역사관을 연계해 협력하자는 내용의 협정 조인식과 함께 쓰시마 시, 부산문화재단,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관계자가 모두 참석한 만찬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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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카쓰 나오키 쓰시마 시장은 "한일 교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통신사 행렬과 조선통신사선이 한데 어우러진 이번 축제는 코로나19 이후 한일 교류의 새로운 시작을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통신사선 재현선은 이날 축제를 끝으로 7일 귀국할 예정이다.

당초 이들은 8일께 부산으로 출발할 계획이었으나, 태풍의 예상 경로가 변하면서 하루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김성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은 "조선통신사와 통신사선은 '교류'를 뜻한다"며 "성실과 믿음으로 서로 교류한다는 '성신교린'(誠信交隣)의 뜻이 쓰시마를 비롯한 일본 내 여러 곳에서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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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