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목소리 내도 불이익 없다는 믿음…실리콘밸리 혁신기업 키운 공통 DNA죠"
201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혁신 테크기업에서 일하는 한국인 인사(HR)담당자들이 ‘실리콘밸리 HR연구회’를 조직했다. 테크기업 HR담당자들은 3개월에 한 번씩 모여 각 사의 HR 이슈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했다. 시작은 5명이었지만 66명까지 늘 정도로 성장했다.

실리콘밸리 HR연구회를 주도한 사람은 드론 분야 기술 개발 기업인 포티투에어(42air)의 박영희 상무(사진)다. 박 상무는 HR연구회 발족 당시 SK하이닉스 미주법인에서 HR팀장으로 근무 중이었다. 박 상무는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동안 빅테크들이 시가총액 1조달러(2018년 애플·아마존, 2020년 마이크로소프트·구글, 2021년 메타)를 달성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실리콘밸리 테크기업 인사담당자들과 교류하면서 얻은 인사이트를 엮어 <실리콘밸리의 HR이야기>란 책을 펴냈다.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출국을 앞둔 그를 지난달 중순 만났다.

박 상무는 “실리콘밸리의 혁신기업들은 임직원의 심리적 안전, 다양성, 긍정적 기대 등 세 가지 공통 DNA가 있다”고 설명했다. ‘심리적 안전’은 조직에서 어떠한 자기 목소리를 내도 전혀 불이익이 없다는 믿음이다. ‘다양성’은 다양한 인종이 모인 인력 구성이다. 실리콘밸리는 이미 백인이 다수 인종의 지위를 잃은 지 꽤 오래돼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나오는 시너지가 혁신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긍정적 기대’란 파격적인 제도를 시행해 구성원들에게 자율성을 줘도 조직원들은 이를 남용하지 않고 취지에 맞도록 잘 사용해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그는 “긍정적 기대를 경험한 사람들이 더 높은 성과를 내는 사이클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상무는 어릴 적부터 ‘사람은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가’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이런 관심은 그를 자연스레 HR로 이끌었다. 미국 코넬대에서 HR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그는 LG전자 북미 모바일사업법인에 입사했다. SK하이닉스 미주법인으로 옮겨 ‘풀사이클 HR’(채용부터 평가 보상 교육 복리후생 퇴직까지 HR총괄업무)을 했다. 그의 석사논문 주제는 ‘조직 냉소주의’다. 그는 “회사가 조직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실패 경험이 쌓여 냉소주의가 된다”며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한 약속이 유지되려면 전문경영인(CEO)의 임기가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직 냉소주의를 잘 극복한 기업으로 구글을 꼽았다. 2009년 구글은 관리자 1만 명을 분석한 ‘구글 산소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직원들은 능력보다 직원의 삶과 경력 개발에 관심을 가진 관리자를 선호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박 상무는 “관리자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조직원의 경력 개발을 지지하는 문화가 오늘날의 구글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 시대 인재상은 무엇일까. 박 상무는 “혁신기업들은 모두 ‘휴머노크라시(Humanocracy·사람중심주의)’ 조직문화를 갖고 있었다”며 “지시·복종보다 자율적 조직문화가 결국 혁신과 더 높은 생산성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