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호 박사, 13권 책으로 마무리…"호기심에 시작해 내 팔과 바꿔"
고구려-수 전쟁 다룬 책도 함께 내…"북제 역사서 번역도 하고파"
강했지만 오래 못 간 수나라 역사 '수서' 5년 만에 완역
수나라는 오랜 기간 분열돼 있던 중국을 통일하며 고대사에 한 획을 그었으나, 그 위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581년 나라를 세우고 618년 멸망할 때까지 역사에 기록된 기간은 불과 37년이었다.

그러나 400년 가까운 위진남북조 시대의 혼란을 종식한 통일 왕조답게 수나라는 건설, 천문학, 도량형, 예법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런 수나라의 흥망성쇠를 담은 역사서 '수서'(隋書)가 약 5년 만에 완역됐다.

중국의 정사(正史·정확한 사실을 추구한 역사)를 우리말로 다 옮긴 것은 '사기', '한서', '삼국지'에 이어 4번째다.

강했지만 오래 못 간 수나라 역사 '수서' 5년 만에 완역
최근 '수서 율력지'(지식을만드는지식)를 끝으로 총 13권의 번역 작업을 마친 권용호 박사는 27일 "'내 팔과 바꿨다'고 말할 정도로 외롭고 힘든 작업이었다"며 소회를 밝혔다.

수서는 난세의 통일과 대제국 형성, 전쟁 등 왕조 역사를 세밀하게 담은 자료다.

제왕의 기록을 담은 제기(帝紀) 5권, 천문·역법·음악·예법 등을 정리한 지(志) 30권, 다양한 인물의 행적과 성취를 다룬 열전(列傳) 50권 등 총 85권에 이른다.

원고지로 따지면 1만4천189매, 책으로는 5천944쪽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이다.

권 박사는 "중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중국이라는 나라를 조금 더 본질적으로, 실체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라며 "다시 하면 못할 것 같다"고 웃었다.

오랜 기간 중국 고전 문학을 연구해 온 그에게도 수서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권 박사는 "한문으로 된 원전에 대한 부담이 가장 컸다"며 "'율력지'는 태양과 달, 다섯 행성의 운동 등 고대 천문과 역법 관련 용어와 난해한 계산이 많아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강했지만 오래 못 간 수나라 역사 '수서' 5년 만에 완역
그런데도 묵묵히 번역을 이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수서를 보면서 왕조의 흥망성쇠를 배우고, 변치 않는 중국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었다"고 힘줘 말했다.

"(고구려·수 전쟁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군사를 몰아낼 때는 신이 나서 번역하기도 했어요.

"
1천400년 역사서를 다루다 보니 '이 구절이 사실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권 박사는 "'처음에 나무껍질을 벗겨 먹다가 점차 나뭇잎을 먹었다.

나무껍질과 나뭇잎을 다 먹고 나면 흙을 삶거나 볏짚을 가루로 빻아 먹었다.

이후에는 사람이 사람을 먹었다'는 구절을 보고는 믿기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수서 완역과 함께 발간된 '고구려와 수의 전쟁'(지식을만드는지식) 책은 수서가 왜 중요한지 보여준다.

권 박사가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관련 사료를 틈틈이 모아 지은 이 책에는 전쟁의 배경, 준비 과정, 진행 양상, 전쟁 이후 상황 등이 촘촘히 정리돼 있다.

강했지만 오래 못 간 수나라 역사 '수서' 5년 만에 완역
그는 "수나라 통치자들이 고구려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전쟁 전후에 발생한 민란이 어땠는지 등은 수서 전체를 통독하지 않으면 발췌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자신했다.

고된 작업을 끝냈으나 권 박사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보였다.

"수나라 전에 있던 북주의 역사서인 '주서'(周書) 번역을 마쳤어요.

후속 작업으로 북주와 동시대인 북제의 '북제서'(北齊書) 번역도 생각 중인데 몸이 받쳐줄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 수서 율력지 = 위징·영호덕분·이순풍 지음. 권용호·이면우 옮김. 354쪽
▲ 고구려와 수의 전쟁 = 권용호 지음. 292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