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 법률사무소 출신으로 미국 MBA를 거쳐 1만명이 넘는 변호사가 이용하는 서비스를 만든 인물이 있습니다. 리걸테크 스타트업 엘박스를 창업한 이진 대표입니다. 한국 대표 법률 데이터 기술 기업을 꿈꾸는 이 대표를 한경 긱스(Geeks)가 인터뷰했습니다.
미국 창업 준비하던 변호사, 3년 만에 200억 투자 받은 비결은 [긱스플러스]
변호사 3분의1 쓰는 판례검색 서비스
김앤장 퇴사 후 미국 서부로 MBA간 까닭
창업 후 3년 여만에 250억 누적 투자유치


253만건. 리걸테크 스타트업인 엘박스가 데이터베이스에 보유하고 있는 판례 수다. 김앤장, 광장, 태평양 등 주요 로펌들을 비롯해 국내 전체 변호사(3만명)의 3분의 1이 넘는 1만3000명의 변호사가 엘박스의 판례 검색을 이용한다. LG, SK, 삼성물산 등 대기업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금융결제원 같은 공공기관도 엘박스의 고객이다.

최근 5년 내 선고된 판례 수가 엘박스의 전체 판례 253만건 중 129만건. 이용자가 '미등록 판례 요청'을 하면 1~2일 내에 판결을 확보해 이메일로 제공한다. 변호사 회원들이 요청한 판례는 보통 실무에 활용도가 높은 중요 판결인 경우가 많다. 회원들의 미등록 판례 요청을 통해 엘박스는 더 좋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더 회원이 늘어나는 선순환을 구축했다.

엘박스는 서비스 시작 전인 2019년 3억원의 시드투자로 시작해 2020년 12억원의 프리A 투자, 2021년 40억원의 시리즈A 투자, 2022년 12월 180억원 투자에 이어 지난 2월 20억원 투자까지 200억원 규모의 시리즈B투자를 유치했다. 창업 후 250억원이 넘는 누적투자를 받는 데 성공한 셈이다. 판례검색 시장의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빠르게 시장에 자리잡았다.
이진 엘박스 대표
이진 엘박스 대표
엘박스를 창업한 이진 대표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법을 더 가깝고 의미있게 만드는 게 회사의 목표"라며 "판례 검색 서비스가 그 첫 여정이고, 앞으로 출시하는 서비스들도 법을 더 의미있게 만든다는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창업 준비했던 변호사

이 대표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5년간 M&A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 2017년 불쑥 사표를 던지고 미국으로 떠났다. 창업을 마음에 품었다. 미국 로스쿨이 아닌 UC버클리 비즈니스스쿨의 MBA과정이 이 대표의 행선지였다. 이 대표는 "의도적으로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서부의 학교로 갔다. 미국에서 MBA 과정을 거치면서 비즈니스 관련 지식도 쌓고 네트워크도 만들어서 창업하겠다는 계획이었다"고 했다.

한국보다 시장이 더 큰 미국 창업을 준비했다. 이 대표는 어릴 때 해외 체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영어에 자신감도 있었다. 구체적인 사업 아이템도 있었다. 하지만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에 부딪혔다. "영어를 잘한다고는 하지만, 창업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설득작업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언어적 스킬로 투자자와 고객의 마음을 동하게 해야하는데 제 영어실력은 거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리걸테크가 아닌 다른 아이템으로 창업을 준비했던 것도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이 대표는 투자자를 만나면 늘 같은 질문을 받았다. '너는 그동안 뭐 하던 사람이야'라는 질문이었다. 한국 김앤장이라는 로펌에서 M&A를 담당했다고 대답하면 실망하는 투자자도 있었다. "창업 아이템이 이전 커리어와 연결이 안 됐기 때문에 제가 얘기하면서도 설득력이 있게 들리지 않았어요. 커리어와 연결되는 아이템을 찾아야겠다는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미국 유학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 대표가 자신이 가장 잘 알고있는 리걸테크 창업을 추진한 이유다. '맨땅에 헤딩'이었던 미국과 달리 한국엔 이 대표가 십수년 간 쌓아왔던 사회적 자본이 있었다. "시장의 크기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내 몫은 얼마인가를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한국에서 리걸테크 창업을 한 이유입니다." 귀국하기 한 달 전인 2019년 5월 자본금 2000만원으로 엘박스의 전신인 리걸텍을 설립해 판례검색 사이트의 개발에 착수했다.

3년 만에 250억 투자유치

판례는 법률 업무를 할 때 필수적인 데이터 중 하나다. 전국 법원에서 매년 약 150만개의 판결이 나올 정도로 양 자체가 많다. 이 데이터를 잘 가공해 제공한다면 찾을 사람이 많다고 봤다. 판례 데이터 서비스로 엘박스를 시작한 배경이다. "법조인 출신으로 '어떤 문제로 나는 괴로웠는가' '이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가'를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 끝에 나온 게 판결문 검색 서비스였어요."

법률정보 검색에 들이는 변호사들의 수고를 줄여 법논리 개발 등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법조계의 구글'을 만들겠다는 게 첫 포부였다. 엘박스의 사업계획을 담은 파워포인트 10장으로 초기투자사인 블루포인트파트너스로부터 3억원의 시드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2021년 시리즈A(40억원)를 거쳐 올 2월 200억원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엘박스에 투자한 삼성벤처투자는 "법률 업무 수행을 위한 리서치 및 법률 정보 열람은 접근 난이도가 있어 기술 도입을 통한 효율화가 절실하고, 엘박스는 법률 전문가들의 업무 효율을 높이면서 압도적인 변호사 수를 확보한 서비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투자배경을 설명했다.

엘박스의 판례 검색은 1, 2심 판결문을 합친 이른바 하급심 판례가 97%를 차지한다. 사실관계가 상세하게 들어있는 하급심 판결이 압도적으로 많은 점이 강점이다. 판례 내용을 편하게 볼 수 있고 밑줄 치기 기능, 알람 기능 등과 같이 사용자들이 원하는 기능들을 적용시켰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유사판례 검색 기능은 수십 만 건의 판례 중 유사한 판례를 빠르게 찾아준다.
엘박스의 유사판례 검색 기능.
엘박스의 유사판례 검색 기능.
이 대표는 리걸테크 스타트업들이 직면해있는 규제 리스크와 직역단체와의 갈등 역시 비즈니스의 일부라고 봤다. "비즈니스라는 게 따로 있고, 문제 상황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의 어려움들이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는 데 있어서 장애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받아내는 과정 자체가 곧 비즈니스라고 봅니다."

"기술 접목해 혁신 이어갈 것"

이 대표는 판결문 검색 서비스뿐만 아니라 법률 이용에 도움이 되는 다른 서비스들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꼭 법조인이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때 '법이 필요할 때 내 지척에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설사 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내게 쓸모있는 형태로 친절하게 나를 맞이하고 있는가를 돌아보면 그렇지 못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 여정으로 시작한 게 판결문 검색 서비스고, 앞으로 출시하게 될 다른 여러 서비스도 법을 더 가깝고 의미있게 만든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엘박스가 법을 다루는 리걸테크 회사인 동시에 100% 테크회사라고도 강조했다. 방대한 법률데이터를 수집하고 기술을 접목해 혁신적인 제품들을 내겠다는 계획이다. 데이터를 AI 등 기술과 접목하는 과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대표는 "대규모언어모델(LLM)과 관련해 기술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들을 출시할 생각이다. 한국어로 만들어진 최대 규모 법률 데이터 회사로 진화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