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주식시장에서 두산에너빌리티 한전기술 한전KPS 등 원전주가 일제히 올랐다. 전날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원전, 수소 등으로 새 공급 여력을 확충할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면서다.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일시적으로 급등했지만, 새 원전을 짓기 위해 시급하게 통과돼야 할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어 원전주는 당분간 변동성 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 된 韓 원전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와 국민의힘의 에너지 분야 최대 관심 법안 중 하나인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이 여야 간 이견으로 7월 국회에서도 통과가 어렵게 됐다. 특별법은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 처분시설을 짓기 위한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영구 처분시설이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용기에 밀봉한 후 땅속 500~1000m 지점까지 터널을 뚫어 영구 격리하는 시설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원전 화장실’을 만드는 것이다.

국내에선 영구 처분시설이 없어 1만8000t에 달하는 사용후핵연료를 발전소 내 임시 저장시설에 냉각해 보관하고 있다. 문제는 2030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한울원전(2031년), 고리원전(2032년) 등의 임시 저장시설 용량이 포화 상태에 다다른다는 점이다. “영구 처분시설 없이 원전을 계속 짓는다는 것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탈원전’ 주장하며 시간 끄는 野

특별법은 애초에 여야 간 이견이 큰 법안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특별법을 대표 발의하는 등 전 정부에서도 추진하던 법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민주당의 입장이 사실상 반대로 돌아섰다. 법안 자체보다 ‘탈원전’과 ‘탈원전 폐기’라는 에너지 정책의 방향성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전됐기 때문이다.

13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이 법안을 ‘1순위’로 논의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 등 원전이 가져오는 부작용이 큰 상황에서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의 주장을 두 시간 가까이 이어갔다. 저장 용량과 조성 시점, 주민 보상 방안 등 특별법의 핵심 사안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하지 못했다. 김성환 의원이 “지역 주민에 대한 의견 수렴이 더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법안 처리는 더 미뤄지게 됐다.

원전 생태계 관련주에 찬물 끼얹나

전문가들은 법안 통과가 지연돼 중간 저장시설을 적기에 확보하지 못하면 원전 가동이 중단되고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영구 처분시설을 짓는 데까지 37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2030년부터 임시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는 상황에서 중간 저장시설을 구축해야 하는데, 이를 설치하는 데도 최소 7년이 걸린다.

윤종일 KAIST 원자력·양자공학 교수는 “국회가 당리당략에 빠져 특별법을 무산시킨다면 경제적, 환경적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세대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법안 통과가 무산되면 신규 원전 건설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원전 생태계 관련 기업 주가에도 찬물을 끼얹는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