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곤의 행정과 데이터과학] 정부는 좋은 정책의제를 발굴하고 있을까?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다. 그중 사회가 함께 관심을 두는 문제를 공중의제라고 한다. 시간과 자원의 제약으로 정부가 모든 공중의제를 다룰 순 없으므로 핵심적인 문제만 정부의제로 다뤄지게 된다. 이때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의제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은 정부의 매우 중요한 역량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과연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정부의제의 초점이 잘 맞춰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탈원전 폐기는 현 정부의 핵심 정책의제다. 하지만 원전만 추가 가동하면 해결될 것만 같았던 한국전력의 적자 문제는 원전 가동률이 작년부터 80%를 넘었는데도 2023년 1분기 6조2000억원 적자가 나고 있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원전만이 한전 적자의 핵심 원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전기차 등 신규 전력 수요 증가로 전기 생산만이 문제일 것 같지만, 송배전시설 용량도 큰 문제다. 에너지의 공급과 수요, 그리고 연관된 기반시설 문제를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함에도 탈원전 논쟁이 나머지 의제를 가려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사실 한국 경제는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 제조업 재고율은 지난 4월 1985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경상수지는 계속 악화 추세를 보여 2023년 계속 적자 상태에 빠져 있다. 미국과 한국의 금리 격차는 금융시장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가구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6.5%로 미국(101.2%) 프랑스(124.3%)보다 훨씬 높은 실정이다. 높은 가계부채로 인한 소비 위축, 미·중 갈등에 따른 대중 무역 위축 등 다양한 요인으로 1%대의 실질성장률에 머무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경제 문제에 대한 정책의제는 정치적 논쟁이 되는 의제들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듯하다.

정책의제는 고정관념이 아니라 냉철한 분석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2016년과 2022년 사이 국내 박사 학위 취득자는 28% 증가했다. 박사 학위가 가장 많이 증가한 분야는 예체능(99%), 교육(38%)과 인문(34%) 분야이고 자연계열(21%)과 의학계열(6%)은 상대적으로 적게 증가했다. 미국에서는 2021년 5만2250명의 박사 학위 취득자 중 과학과 공학 분야 박사가 78%를 차지하는데, 한국은 42% 수준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앞으로 산업현장에서는 우수한 젊은 연구자 확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고등교육 정책의 의제는 양이 아니라 질을 중심으로 마련돼야 한다.

정책의제와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무의사결정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권력자가 자신들에게 아픈 정책 문제를 숨기고 아예 정책의제조차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소모적인 의제로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게 되면 진짜 문제를 시민은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좋은 정책의제를 시민이 발굴해야 하는 이유다.

요즘 인공지능 기술 발전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다 보면 알아서 나의 관심사에 맞는 상품 및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경우를 흔히 접한다. 좋은 콘텐츠를 많이 볼수록 좋은 콘텐츠를 추천받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민이 정부에 “도대체 뭐가 중한디?”라는 질문을 계속 던질 때 정부는 시민을 위한 정책의제에 더 많은 시간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