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킬러 규제’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제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업인들의 투자 결정을 막는 결정적 규제를 팍팍 걷어내 달라”며 처음 꺼낸 말이다. 그러면서 “단 몇 개라도 킬러 규제를 찾아서 시행령이나 법률 개정을 통해 신속히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험생에게 고통을 주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킬러 문항처럼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킬러 규제를 제거해야 우리 경제가 그나마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의 규제 혁파 언급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법령 한 줄에 기업의 생사가 달려 있다”, “모래주머니 달고 금메달을 따오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며 각종 회의에서 규제 개혁 필요성을 반복적으로 역설했다. 달리 보면 규제 종류가 그만큼 많고, 해묵은 규제를 손아귀에서 놓지 않으려는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수동적 태도가 변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정부의 개혁 입법에 반대로 일관하는 거대 야당의 비협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외 여건을 보면 하반기 경제운용이 녹록지 않다. 정부는 그제 회의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4%로 제시했다. 지난해 말 내놓은 전망치(1.6%)보다 0.2%포인트 낮췄다. 수출과 투자가 당초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탓이다. 특히 올해 수출은 6.6%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6개월 전 전망치(-4.5%)보다 감소 폭이 더 크다. 재정 여력과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할 수도 없다. 어떻게든 수출과 투자를 늘리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윤 대통령의 킬러 규제 언급도 기업 투자를 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독려일 것이다. 수명을 다한 대형마트 규제법, ‘CEO 처벌법’이 된 중대재해처벌법,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규제가 강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 관리법(화관법) 등 대기업 투자를 막는 ‘덩어리 규제’부터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 작은 규제라도 기업 투자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 역시 킬러 규제다. 규제 개혁의 성패는 공직사회가 얼마나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정권이 교체된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공무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