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일본 국민병'이 된 것은 정신과 의사가 주도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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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출간된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는 '일본에서 왜 우울증이 국민병이 되었나'를 탐구한 책이다. 여기까지 듣고 '남의 나라 얘기네'라며 넘겨선 곤란하다. 한국은 우울증 유병률 3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1위인 나라다(2020년 기준).

저자 기타나카 준코는 의료인류학자로, 1990년대 말 북미 친구들에게 "일본 사람들은 왜 우울증에 걸릴 만큼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듣고 그 답을 찾기 위해 25년간 우울증을 연구해 이 책을 내놓았다. 2011년 영어로 먼저 출간된 뒤 일본어, 프랑스어, 페르시아어로 번역됐다.

읽기 수월한 책은 아니다. 무거운 주제에다가 글을 풀어가는 방식도 학술 연구에 가깝다.

그러나 저자는 분석적인 접근을 통해 우울증이 사회적 질병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한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기까지 여러 사회적 요소가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그가 '우울증 환자'로 불리는데도 사회적 맥락이 작용한다.

즉, 우울증은 단순히 개인 질환이 아니라 제약회사, 행정 관료, 변호사, 노동조합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의해 그 의미가 지속적으로 재정의되는 사회적 질환이다.

예컨대 과로로 인해 우울감을 호소하다 자살한 노동자를 어떻게 볼 것인지, 그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할 것인지에 따라 우울증의 정의와 사회적 맥락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우울증을 터부시하던 사회가 그 병을 인정하고 공론화해야 비로소 우울증은 통계에 포착된다.

저자는 일본에서 '드문 병'으로 여겨졌던 우울증이 '국민병'이 된 데에는 정신과 의사들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봤다. 정신과 의사들은 경기침체로 지친 사람들에게 그들의 피로감과 무기력을 우울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꽁꽁 숨어있던 우울증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건 잘한 일일까.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을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울증이라는 병명으로 일본인들의 우울감을 진단한 순간, 그 치료가 약물과 의학의 몫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우울증 환자로 불리는 순간 개개인을 우울증에 이르게 한 사회적 맥락이 희미해지는 모순이 벌어지는 것이다.

우울증이 처한 아이러니에 대한 통찰이 빛나지만, 10년 전에 나온 책이 이제서야 국내에 소개됐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사이에 코로나19 팬데믹, 소셜미디어 등 우울증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 크게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