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급망 재편과 대만·남중국해 간섭 불가 입장 고수할 듯
미국, 신냉전 고착 우려해 상황 관리 방점…디리스킹 강조 예상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4년 8개월 만에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 성사로 미중 양국이 '관계 조정'에 나설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4년 8개월 만에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이 성사되면서 미중 양국이 '관계 조정'에 나설 방침이어서 주목된다.
첨단 반도체부터 리튬·희토류 등 핵심 광물, 그리고 대만·남중국해 문제로 사사건건 갈등과 대립을 거듭해온 양국이 이들 문제를 모두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을 것으로 보이나, 어느 것 하나라도 가닥이 잡힐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특히 중국을 '전략적 경쟁국'으로 규정한 미국이 이참에 중국의 패권 도전 의지를 꺾겠다는 의지를 보여왔고, 중국 역시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뚜렷이 해온 점에 비춰볼 때 미중 양국 간 접점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블링컨 방중의 동상이몽…美 '소통' vs 中 '핵심이익 존중'
그런데도 현재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미국·서방 대 중국·러시아' 구도의 신냉전 심화 우려가 커지고 있어 이번 기회에 미중 양국이 '상황 악화' 방지에 뜻을 모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 먼 길 돌아온 블링컨…4년 8개월 만에 美 국무 방중
블링컨 장관은 이달 18∼19일 중국을 방문하는 걸로 미중 양국이 합의했다.
눈길을 끄는 건 양국 외교 당국의 메시지다. 미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이 중국 고위 관리들과 만나 미중 관계를 책임 있게 관리하기 위한 소통 채널 유지의 중요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쌍방 협의를 거쳐 블링컨 장관의 방중이 성사됐다는 입장만 내놓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2018년 10월 방중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찾는 블링컨 장관은 방중 기간에 카운터파트인 친강 외교부장과 그 윗선인 왕이 공산당 정치국원을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블링컨 장관이 시진핑 국가 주석을 면담할지는 현재로선 베일에 싸여 있다. 사실 미중 관계 진전 가능성이 없다면 시 주석이 블링컨 장관을 접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근 몇 년 새 미중 관계는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었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중국의 불공정 무역에 초점을 맞춰 고율 관세를 매기는 방법으로 중국을 견제했다.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국과 연계해 경제·안보 이슈로 대중국 압박의 강도를 높여왔다.
첨단 반도체·핵심 광물에 대해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 작업을 추진하고, 대만과 남중국해 이슈로 대중국 포위망을 죄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화해왔다.
미국은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대화도 병행해왔다. 실제 작년 11월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이후 표면적으론 대화 모드로 전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미중 관계가 "아주 조만간 해빙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해빙이라는 희망 사항을 강하게 강조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월로 예정됐다가 중국 '정찰 풍선' 격추 사건으로 불발됐던 블링컨 장관의 방중이 4개월 만에 성사됐다.
이제 미중 양국이 "치열한 외교를 할 시간"이라는 언급이 미 행정부 내에서 나온다.

◇ 中, 마주 앉지만 대만 문제 등 강경 입장 고수할 듯…접점 찾을까
1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블링컨 장관의 방중 기간 양자 관심사, 글로벌·지역 문제, 초국가적 도전에 대한 협력 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블링컨 방중의 동상이몽…美 '소통' vs 中 '핵심이익 존중'
SCMP는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전날 블링컨 장관과의 통화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된 중국의 기존 입장을 반복하면서 "존중을 보여주고, 내정 간섭을 중단하며, 경쟁이라는 이름의 주권·안보·개발 이익 훼손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이로 미뤄볼 때 중국 당국은 블링컨 장관에게 미국의 첨단 반도체·핵심 광물 공급망 재편에 대한 강한 거부 의사를 표시하면서, 중국의 '핵심 이익'인 대만·남중국해 문제를 건드리지 말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관측된다.
구체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 고수를 주장하면서 독립 성향의 대만 민주진보당(민진당) 정부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용납할 수 없으며,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침범하지 말라는 기존 주장을 재차 강조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선 중국이 우크라이나전과 관련해 기존 입장을 일정 수준 조정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중국은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장기화해온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의 침략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을 지속해와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미움을 사 왔다.
이 때문에 중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 노력도 믿음을 주지 못했다.
실제 중국은 지난달 중하순 리후이 우크라이나전 중재 특사를 우크라이나, 폴란드, 프랑스, 독일, 벨기에 유럽연합(EU) 본부, 러시아 등에 보내 평화 협상 개시 방안을 논의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블링컨 장관의 이번 방중 기간에 이전보다 진전된 우크라이나전 중재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선 중국 역시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미중 간에 공동 대처·협력 방안을 제시할 수도 있어 보인다.

◇ 美, 소통에 방점 두되 '디리스킹' 주력 예상…中 반응 주목
이런 가운데 미국 조야는 블링컨 장관의 방중이 미중 간 소통의 계기가 될 것인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에 박차를 가하면서 미중 대립이 전방위로 확산했으며 신냉전 위기가 초래됐다고 보고, 이젠 오판으로 인한 충돌을 막으려면 소통과 상황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이 때문인지 중국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최근 중국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해왔다.
블링컨 방중의 동상이몽…美 '소통' vs 中 '핵심이익 존중'
미국 주도로 지난달 12일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의 오스트리아 빈 회동이 성사됐고,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직후 바이든 대통령의 미중 해빙 가능성을 언급한 발언이 나왔다.
이어 지난 3일 싱가포르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미국이 제안했던 국방장관 회담이 중국의 거부로 불발됐지만, 미국은 지난 4일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중국에 보내 블링컨 장관의 방중과 관련해 논의했다.
하지만, 미 행정부의 이런 일련의 노력은 미중 갈등·대립을 해소하려 한다기보다는 상황 관리에 방점을 둔 기색이 역력하다.
이와 관련, 크리튼브링크 차관보는 "미중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바꾸거나 어떤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로 블링컨 장관이 중국에 가는 게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커트 캠벨 백악관 NSC 인도·태평양조정관도 "서로의 의도에 대해 명확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중요한 진전이며 특히 현재 미중관계에서는 그렇다"고 말했다.
당장 해법을 찾기보다는 소통과 상황 관리를 할 채널을 확보하자는 의지가 묻어난다.
사실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전략 기조를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으로 전환을 공식화한 것으로 보이며,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통해 이 같은 미국의 의지를 전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기존의 첨단 반도체·핵심 광물의 공급망 재편, 대만·남중국해 문제 등과 관련해선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그 이상으로는 전선을 확장하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관건이다.
중국이 기존과 마찬가지로 서방과의 갈등·대립 국면에서 미국의 디리스킹 입장도 수용할 수 없다고 나온다면 미중 양국의 '강 대 강' 구도는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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