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안보리 진출' 공개회의…"국제사회 리더십 공백 메우는데 기여하길"
"안보리 결정장애 상태"…한국 역할 주문한 전직 외교장관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강대국 진영 대결로 제 기능을 못 하는 가운데 내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재진입하는 한국이 더욱 능동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직 외교장관들이 제언했다.

국립외교원에서 15일 열린 한국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 관련 공개회의에는 과거 외교부를 이끌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윤영관·송민순·윤병세 전 장관이 참석해 현재 안보리 상황을 진단하고 한국의 역할에 대한 조언을 내놨다.

특히 이들은 거부권을 지닌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P5) 내부의 대립 구도로 안보리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을 공통으로 언급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보편적 가치라는 방향성을 잃으면 안 된다.

안보리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건 방향성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5개 상임이사국이 국제평화와 정의라는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보리는 일종의 결정장애 상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북한의 핵개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명백하고도 중대한 국제평화와 안보 침해 사안에 대해서도 아무런 공식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안보리가 논의하는 이슈가 확대되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며 특히 "한국이 비상임이사국으로 있을 때 안보리에서 AI(인공지능) 문제를 심각하게 토의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윤영관 전 장관 역시 "지난번 코로나19 재앙 때 각국이 협력해 공동으로 대처하기보다 각자도생했던 것처럼 이른바 글로벌 리더십의 결핍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한국이 안보리 이사국 진출로 이런 국제사회의 리더십 공백을 메꾸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빈국에서 세계 10위 민주국가로 도약한 한국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큰 역량을 갖고 있다"며 "이런 역할을 충분히 할 때 한국이 당면한 한반도 안보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번영 달성에 필요한 국제적 위상과 지원 세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민순 전 장관은 "국제질서를 지켜야 할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그 질서를 망가뜨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상임이사국보다 비상임이사국들의 균형 있는 정책이 국제질서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가 지금 지켜지지 않는 데는 상임이사국들 책임이 많다.

WTO 체제도 마찬가지"라며 "국제사회의 규범에 중요한 축을 이루는 양자간 합의들도 안 지켜지는 게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들을 (한국이) 베이징에서나 워싱턴에서나 똑같이 할 수 있고 유엔에서도 그러한 정신에 따라서 해 나간다면 상임이사국들의 일탈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그것이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 가는 큰 길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윤병세 전 장관은 "(한국이) 과거 2회에 걸쳐 안보리 이사국을 수임하던 탈냉전시대와 달리 현재 전개되는 신냉전 양상은 안보리 역할과 성격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세계화와 탈냉전 시기가 안보리의 적극적 행동주의 시대였다면 현재 진영간 대립 시대에는 중러 간 소위 무제한 협력 등으로 안보리가 신냉전의 축소판이 될까 우려된다"고 짚었다.

그는 "우리 정부, 특히 유엔 외교팀이 안보리와 유엔의 역할 강화를 위한 핵심 축이 되리라고 확신한다"며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의 역사적 현장에 참여한다는 사명감을 주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