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도가 보여준 아름다운 인생,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 제목을 들으면, 작년에 개봉했던 류승룡, 염정아 주연의 한국 영화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과 로베르토 베니니가 연출하고 출연한 이탈리아 영화가 먼저 생각나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전자는 MZ세대 전후일 가능성이 많고, 후자는 X세대 전후일 가능성이 많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 영화는 크게 흥행하지 못해 제목만 아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탈리아 영화는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세대가 상당수 한 번쯤은 관람했을 만큼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1997)는 영상 콘텐츠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영화의 2차 시장으로서 비디오 대여점이 성행하고 있던 1999년에 개봉했다. 문화적 다양성은 지금보다 떨어졌는지 몰라도 그 시대에는 좋은 영화 한 편이 개봉하면 대중들 사이에서 그 공감대가 폭넓게, 오랫동안 지속되곤 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작품성은 각종 영화제, 영화상의 화려한 수상 이력이 잘 말해준다. 1998년 칸 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대상을, 이듬해 열렸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남우주연상, 음악상,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외국어영화상 수상자로 호명되었을 때 의자 위로 올라가 손을 흔들고 계단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니던 로베르토 베니니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아카데미 시상식의 명장면 중 하나로 회자된다. 마치 그가 연기했던 영화 속 ‘귀도’처럼 어린애 같은 장난기와 긍정성으로 똘똘 뭉친 모습이었다.

사실 이 영화의 모든 장점은 귀도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로 갓 상경한 이 시골뜨기 총각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조차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개인주의가 심화된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못 말리는 장난기와 로맨티스트적 기질은 때때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성가시게도 한다는 점에서 용인되지 못할 수 있다. 개인의 행복이 강조되면 될수록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도 더욱 죄악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반부, 슬랩스틱 코미디와 판타지가 다분히 가미되어 있는 영화의 특성상 귀도의 행동들은 밉지 않게 다가온다. 특히,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장학사인 척하는 장면에서 그는 딱딱한 강의 대신 익살스런 행동들로 아이들을 웃게 만든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데다 약혼자까지 있었던 ‘도라’(니콜레타 브라스키)가 귀도를 선택한 것도 그의 꾸밈 없는 고백과 엉뚱한 행동들이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꽃으로 가득한 방에서 귀도가 도라의 뒤를 따라가는 은유적인 장면 다음,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그들은 귀엽고 똑똑한 아들, ‘조수아’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모습도 잠시, 별안간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해 귀도와 조수아는 수용소행 열차를 타게 되고, 그 사실을 뒤늦게 안 도라도 자진해서 수용소에 들어간다.

귀도는 아들이 겁을 먹을까 다시 한 번 기지를 발휘해 이 모든 것이 게임이며, 1000점을 따면 탱크를 선물로 준다는 말로 조수아를 안심시킨다. 그의 거짓말은 여러 번 탄로날 위기를 겪지만, 그 때마다 귀도는 특유의 유머감각과 재치로 위험한 순간을 모면하고 아들을 끝까지 보호한다. 귀도가 곧 사살당할 상황에서조차 조수아를 위해 팔을 크게 휘저으며 행진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가슴 아픈 장면이다.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폭력과 살상의 공포 속에서도 이처럼 긍정과 희망으로 무장한 채 아들과 아내를 지켜낸 한 남자를 앞세워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이야말로 ‘인생은 아름다워’를 명작으로 만든 요소일 것이다. 당대의 많은 청년들은 로맨틱하고 다정하면서도 책임감이 강하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귀도를 가장의 롤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만약 2023년의 20대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같은 반응일지는 미지수다. 지난 20년간 가족의 형태도, 가장의 개념도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또한, 좋은 배우자의 범주에서 가난한 귀도가 완전히 멀어져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시대를 막론하고 따뜻하고 바른 성정을 가진 한 인간인 귀도가 본받을 만한 캐릭터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프 트로츠키의 유언장에서 유래됐다는 아이러니한 제목,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우리 말로 ‘인생’은 사람과 삶 모두를 일컫기도 한다. 오늘은 제목 앞에 주체를 덧붙여 읽어본다. ‘귀도의 인생은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