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달리는 소리가 BGM…30년 을지로 지하 지킨 '시티커피'
쿠릉쿠릉 쿠르릉,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전동차가 지날 때마다 커피잔이 잔 받침에 부딪혀 달그르르 소리를 낸다. 바닥부터 천정까지 요란하게 흔들리니 이따금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규칙적으로 테이블과 잔을 흔드는 소리가 이 공간을 채우는 가장 큰 물리적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인지 시티커피 손경택 대표는 지하철 지나가는 소리가 배경음악과 다름없어 음악 따위는 틀지 않아도 적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소리에 금방 적응해 주변을 둘러보니 소리 없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어떤 손님의 모습이 보였다. 간간히 국내외 정세에 대해 토론하는 테이블에서 낯익은 정치인들의 이름이 흘러나오고, 배고픈 이들의 허기를 채우는 토스트 혹은 사발면의 냄새가 다음 전동차가 낼 소음까지의 정적을 채웠다. 오랜 토론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어르신들은 얼마간의 커피 값을 서로 내겠다며 싸우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이곳의 오랜 전통이나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손 대표는 두 번째 주인으로 시티커피를 맡은 이래,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이 풍경을 지켜왔다.

‘불도저’ 김현옥은 서울시장 재임시절 수 백 개의 보도육교와 고가로터리를 건설했다. 그가 그리는 서울에서 자동차는 논스톱으로 어디든 달릴 수 있어야 했다. 이와 함께 자동차에 도로를 내어준 보행자들의 통로로, 쾌속 서울의 개발 비용을 충당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10개가 넘는 지하도가 서울시민의 새로운 생활공간으로 자리잡았다. 1967년 을지로 1가의 ‘새서울 지하상가’를 시작으로 서울 곳곳에 지하 공간이 만들어졌고, 이후 1983년 지하철 2호선 개통과 함께 방공의 목적으로 ‘을지로 공공 지하보행로’가 문을 열었다. 시청 앞 ‘새서울 지하상가’부터 ‘서울운동장역’까지 2.8㎞에 이르는 이 길고 복잡한 지하도시에 시티커피도 문을 열었다.

지하상가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서울의 다방에서는 조리사가 직접 커피를 블렌딩하고 추출하며 ‘커피 조리 경쟁’을 펼쳤다. 동서식품과 지금은 대상에 인수된 커피업체 미주산업개발은 조리사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볶은 커피에 각각 배전두커피와 원두라는 이름을 붙여 판촉 전쟁을 벌였다. 역설적으로 인스턴트커피는 1980년 동서식품에 의해 동결건조 기술이 도입되고 품질이 개선된 이후에야 본격적인 대중화가 이뤄졌다. 인스턴트는 원두커피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공정과 기술력을 필요해 제조 비용도 높았는데, 시티커피에서 지금도 판매하는 ‘믹스커피’도 동서식품이 1976년에 최초로 출시했지만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하철 달리는 소리가 BGM…30년 을지로 지하 지킨 '시티커피'
1980년대는 지하상가와 믹스커피의 시대였다. 빠르게 성장해야 하는 도시에는 무엇보다 자동차가 우선이 되어야 했고, 숨 쉴 틈 없이 일해야 하는 도시의 일꾼들에게 믹스커피는 빠르게 녹아들었다. 전성기를 맞은 을지로 지하상가에는 명함가게와 꽃집, 빵집이 있었고 음반가게도 있었다. 심지어 맞춤양복 가게도 있었으니 도심의 직장인들은 자연스럽게 지하상가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목이 좋은 상가의 월세는 지금 물가로 200만원에 달했을 만큼 지하상가에는 항상 사람들이 붐볐다. 빠르고 달콤하게 카페인을 채워주는 믹스커피는 지하상가를 드나드는 이들의 피로를 달래고 열기를 더했다. 그 열기로 도시는 숨을 쉬었다.

세월이 흘러 ‘싸우면서 건설한’ 그 때의 고가도로는 빠르게 수명을 다해 철거되거나 공원이 됐다. 건강보다 나라와 회사의 성장을 생각했던 이들이 마시던 믹스커피는 이제 개인의 취향이 담긴 아메리카노로 바뀌고 있다. 을지로 지하상가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같이 지하도를 쩌렁하게 울릴 만큼 크게 음악을 틀어대던 음반가게는 다음 주인을 찾지 못해 몇 년째 재고정리 간판만 세워놓고 있다. 한때는 가장 세련된 유행이었을 옷이 수 년 넘게 그대로 걸려있는 양복점은 그곳을 찾는 손님들과 함께 늙어가고 있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에 기댈 곳을 잃은 이들에게 시티커피는 여전히 커피 한 잔을 내어주고 있다. 주문한 커피를 직접 가져다 마시는 셀프서비스가 원칙이지만, 종종 손 대표는 자리까지 서빙을 하기도 한다. “30년을 셀프서비스로 운영하니 걸을 일이 없더라고. 이렇게라도 걸어야 운동도 하고 건강해지지.”

시대를 지켜온 한 다방의 역사가 그 걸음걸이에 있다고 말하면 과언일까.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수 십 년의 단골들은 여전히 시티커피를 찾아와 듬성듬성 자리를 채운다. 그들을 위한 손대표의 걸음이 더 오래 이어지길, 서울의 한 귀퉁이를 밝혀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