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백조의 호수’. 관객의 시선이 아닌 다른 무용수들의 눈에 백조는 어떻게 보일까. 이 두 장의 사진은 해외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며 공연 중에 찍은 사진이다. 무대 뒤에서 무용수의 시선으로 백조를 바라본다는 건 정말 특별한 장면이다. 매일같이 공연을 하기 때문에 같은 장면들이 지루할 수 있겠지만, '백조의 호수'나 '지젤'의 경우 여성 무용수들의 군무와 음악, 배경까지 사진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심이 나는 순간들이 있다. 수 많은 '백조의 호수' 사진을 찍었지만 이 사진의 포인트는 무대 옆에서 내려다 보는 앵글이다. 무용수의 땀이 비치는 등 라인과 풀리지 않게 단단히 잠근 후크, 그리고 배경으로 보이는 수 많은 포인트 슈즈의 흔적들이 우아한 백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치는 지 보여준다.두 장의 사진은 공연을 하면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던 시간들을 추억하게 한다. 각각의 무용수들과 많은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진이다.
김윤식 사진작가는 전직 발레리노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입학 후 국립발레단과 체코국립발레단을 거쳤다. 지금은 무용 전문 포토그래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춤을 사랑하는 그의 카메라 렌즈에 무엇이 담길까. 이 사진은 그가 체코 프라하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며 ‘백조의 호수’를 올리고 있을 때 찍었다. 카를교를 지나다가 우연히 블타바강 백조들을 보고 동료 무용수인 알리스와 함께 강으로 향했다. 실루엣과 팔 움직임이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발레리나. 그가 작업한 ‘공존’ 프로젝트 중 하나인 이 사진은 결국 백조가 완성했다. 미끄러운 강바닥에서 무용수가 겨우 중심을 잡은 순간, 저 멀리 한 마리 백조가 무용수 뒤로 지나갔다. 공존 프로젝트가 ‘인간과 자연이 무용수의 움직임과 만나 서로의 본질을 잊지 않으며 융화된다는 메시지’를 백조도 알았던 걸까.
공존(Coexistence, 2018)프라하 블타바강에서 촬영한 백조와 발레리나2018년. ‘공존’이란 주제로 처음 작업했던 사진이다. 포토그래퍼가 되기 전 직업이 무용수여서 그런지 대부분 무용수의 움직임에서 영감과 미적 아름다움을 느낀다. 공존을 주제로 하고 있는 이 작업은 인간과 자연 또는 동물, 물체, 건축 등 무용수의 움직임과 접목시켜 서로의 본질을 잊지 않으며 융화되는 프로젝트다. 당시 나는 체코 프라하에서 한창 무용수로 활동하며 백조의 호수 공연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강에는 가끔 백조들이 찾아와 관광객들이 먹이를 주며 사진을 찍었는데 까를교를 지나가며 문득 생각이 스쳤다. 백조의 움직임을 형상화해서 만든 발레 작품과 실제 백조를 같은 프레임에 담으면 어떨까. 그때 체코 국립 발레단에서 가장 팔을 잘 쓰고 실루엣이 아름답게 나오는 무용수 알리스와 함께 블타바 강으로 갔다. 바닥은 이끼 때문에 미끄러웠고 관광객들이 많아 촬영하기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무용수의 얼굴이 너무 돋보이지 않게, 그러면서 백조가 배경이 되어 무용수에게 너무 치중되지 않도록…. 이 촬영은 몇 시간 이상 진행됐다. 지금 이 사진은 결국 백조가 완성했다. 저 멀리서 한 마리의 백조가 무용수의 뒤로 지나가는 찰나. 그렇게 우린 원하는 순간을 담을 수 있었다. 시간의 기억(Memory of the time, 2020)공연 전 무대리허설을 마치고 찍은 동료의 포인트 슈즈많은 상처가 생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보이던 포인트 슈즈.무대에서 무용수에게 발이란 걷고 뛰는 것이 아닌 하나의 메세지로 통한다.찢어지고 더럽혀진 포인트 슈즈는 관객들을 만나기 위한 그리고 완벽을 추구하는 자신과의 약속의 산물이다. 나는 실제로 보는 것보다 좀 더 슈즈가 돋보이게 작업하고 싶었다.무대 리허설이 끝나고 가방에 있던 16-35mm 광각렌즈로, 날것의 포인트 슈즈 담았다. 피어나다(BLOOM, 2021)꽃처럼 피어나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순간 무대에서 춤 출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은 무용수의 인생에서 꽃을 피우는 시기와 같다. 무용수의 몸과 이를 감싸는 천이, 마치 꽃잎과 꽃술처럼 보이게 한 블룸 프로젝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