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로 한국도 참여해온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의 공급망 협정이 타결됐다. 미·중 대립 와중에 지난해 5월 출범한 IPEF 14개 참여국은 앞으로 공급망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체 공급처 파악, 대체 운송 경로 개발, 신속 통관 등의 협력·공조를 정부 차원에서 모색한다. 참여국들이 공급망에 부정적 요인이나 불필요한 조치를 자제하기로 함에 따라 우선은 특정 국가를 배제할 요소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간의 큰 기류와 최근 반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간 날 선 마찰을 볼 때 주목할 만하다.

IPEF는 주지해온 대로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다자 협의체 전략의 일환이다. 이와 별도로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과 강력한 ‘반도체 연대’도 추구해왔다. 아울러 양자 협력에도 나서 보조금을 내세워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미국 투자를 권유했고, 엊그제는 일본과 ‘반도체 기술협력 강화 로드맵’을 따로 확정했다. 미국의 이런 복층적 행보를 보면 IPEF에서 어떤 중국 압박 논의가 진행될지 예측불허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IPEF의 대의를 지키면서 지혜롭게 나아가야겠지만, 한국의 운신폭은 넓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이나 다른 참가국과 달리 우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 반도체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반도체가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데다, 중국이 여전히 큰 시장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반도체에 관한 한 중국이 한국에 다각도로 협력을 요청해오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최근에는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규제에 맞서 중국이 대응 조치로 마이크론반도체 제품의 자국 시장 판매를 금지했다. 이에 미국은 “주요 동맹국과 긴밀히 협력해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주요 동맹은 한국의 ‘반도체 빅2’다.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이다.

글로벌 반도체 대전이 복잡해지니 IPEF 공급망 협정 체결도 단선적 평가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업계는 초격차 기술 확보·유지, 정부는 지혜롭고 치밀한 중국 다루기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미국에도 우리 입장을 분명히 전하면서 국익을 지켜야 한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의 보조금 조건을 내세워 기업의 기밀정보까지 내놓으라고 해왔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영업에도 간섭하려 든다. 동맹국의 주력 산업을 손아귀에 쥐려는 이런 시도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동맹국 간 지속적인 협조를 위해서라도 미국은 한국의 반도체산업 특성과 비중, 현실적 고충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통상교섭본부 어깨가 특히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