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00만원 챙겨드릴게"…조폭 낀 '여유증 보험 사기단'
경찰이 의사·환자와 짜고 여성형 유방증(여유증) 수술을 하지 않고도 보험금을 허위로 타간 기업형 보험사기 조직을 수사하고 있다. 이들은 여유증 수술을 한 다른 사람의 사진을 도용하는 등 가짜 서류를 보험사에 보내 건당 1000만 원 정도를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경찰에 따르면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와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각각 부산 서면과 서울 강남 일대에서 여유증 수술 보험금을 허위로 타간 보험사기 조직을 수사하고 있다. ‘여유증 보험사기’엔 전국에 체인점 10여곳을 가진 A병원과 성형외과 등이 연루됐다. 경찰과 보험 업계는 이들의 보험 사기 금액이 수백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 사기단은 의사와 브로커, 환자 등이 함께 공모해 활동했다. 이들은 보험사기 브로커를 각 병원 상담 실장으로 위장 취업시킨 뒤 ‘수술 없이 보험금을 탈 수 있다’며 환자를 모집했다. 이 과정에서 조직폭력배들이 환자와 중간 브로커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의사는 보험사에 제출하는 진단서를 조작했다. 이들은 환자 한 명당 실손보험금과 수술비 정액담보 보험금 등 총 1000만 원 이상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보험금은 병원(50%)과 브로커(30%), 환자(20%)들이 일정 비율로 나눠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백내장 보험사기’는 수술이라도 했지만 최근엔 수술 여부마저 속인다”며 “보험 사기가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유증 수술 건수와 보험 청구액은 급증하고 있다. 국내 대형 보험사 두 곳의 여유증 보험금 지급액은 2019년 24억800만원에서 작년 121억1900만원으로 403% 늘었다. 올해(1~4월)에도 33억3000만 원이 지급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2719건이었던 여유증 수술은 2021년 1만143건으로 273% 늘었다.
[단독] "500만원 챙겨드릴게"…조폭 낀 '여유증 보험 사기단'
“누구 소개로 오셨죠? ‘코드’(브로커를 말하는 은어) 알려주세요.”

지난 25일 서울 강남 K성형외과에서 만난 상담 실장은 “여성형 유방증(여유증) 수술을 하고 싶다”고 소개한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그는 병원을 소개해준 브로커 확인이 끝나자 “가슴 안 유선 조직만 확인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며 “보험 가입 상태에 따라 최소 500만 원은 챙길 것”이라고 자신했다. 기자와 동행한 전직 보험사기 브로커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점조직처럼 있는 브로커가 환자를 발굴해 병원에 보내는 시스템”이라며 “수술도 안하고 서류를 조작해 보험금을 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진단서 조작해 허위 수술

보험사기 범죄가 진화하고 있다. 과거 과잉 진료로 보험금을 빼먹는 수법에서 요즘엔 진단서를 조작해 수술을 하지 않고 보험금을 타는 기업형 보험 사기가 늘어나는 것이다. 일부 보험 사기 조직은 온라인 언론사와 의료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보험 사기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광고 대행사를 통해 브로커 수수료를 광고대행비로 받아 자금을 세탁하는 치밀한 수법도 쓰고 있다.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여유증 보험 사기단’은 병원과 브로커 조직, 위장 환자 등은 각자 역할을 분담해 사기를 벌였다. 보험대리점(GA)소속 보험설계사로 구성된 브로커 조직은 전국의 성형외과와 남성전문 병원을 돌면서 의사들과 보험사기를 공모해 병원의 상담실장으로 조직원을 보냈다. 이들은 “수술을 받지 않고도 보험금 수백만 원을 가져갈 수 있다”며 “위장 환자 역할을 해달라”고 공모자를 물색했다.

의사들 역시 보험 사기에 가담했다. 수술 증명을 위해 가슴에 수술 자국을 그리는 시술도 진행했다. 타인의 사진을 도용해 수술 전후 사진을 만들기도 했다. 진단서를 조작해 관련 서류를 보험사에 제출한 것이다. 허위진단서 작성죄는 형법에 따라 3년 이하 징역이나 7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해진다.

○병원·브로커·환자 기업형 범죄

보험설계사 경력이 있는 조직원은 보험 가입부터 허위 수술, 보험금 지급까지 한번에 이뤄질 수 있도록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500만원가량 하는 여유증 수술은 실손보험금으로 450만원(90%)정도 나온다. 수술시 보험금이 지급되는 수술비 정액담보 보험금도 적극 활용했다. 정액담보 보험금은 보험사별로 중복 지급이 가능하다. 환자는 결제한 수술비를 실손보험으로 처리하고 남은 1000만 원은 병원(500만 원)과 브로커(300만 원), 환자(200만 원)가 나눠 가졌다. 수사망에 올라와 있는 B병원은 일 년에 수백건 이상을 수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럴 경우 빼돌릴 수 있는 금액만 수백억 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또 환자들에게 보험 가입도 유도했다. 한 브로커는 “보험 가입 후 보험금이 바로 나오는 상품도 있고 중복 지급도 된다”며 “최대한 많은 보험사에 가입한 뒤 보험금을 받고 해지하라”고 사기를 공모한 환자에게 조언했다.

이들의 범행은 환자 행세를 한 조직폭력원의 수술 전후 사진에서 문신이 달라진 것이 보험사에 발각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이들이 국내 최대 보험사기 브로커 조직인 H사로부터 파생된 조직으로 보고 있다. 과거 H사 조직원으로 백내장 관련한 보험사기에 가담했다가 수법을 익힌 후 여유증을 이용한 사기 조직을 따로 만든 것이다. H사는 지난해 경찰이 압수수색했던 강남의 대형 안과에서 주로 활동했던 조직으로 현재까지 갑상선과 하지정맥류, 자궁근종 등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한 보험사기 금액만 1조818억원에 달한다.

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