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의회의사당. 챗GPT 창시자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상원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마주 앉았다. 크리스티나 몽고메리 IBM 부회장, 게리 마커스 뉴욕대 명예교수도 자리를 함께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어떻게 규제하고 활용할지 의회와 업계가 함께 고민하기 위해 마련된 AI 청문회였다. 크리스 쿤스 민주당 의원은 “개방된 시장과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AI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날 한국의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장외투쟁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각 시·도당위원장, 국회의원, 지역위원장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저지’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김남국 의원 코인 투자 논란으로 당 지지율이 추락하자 국면 전환을 위해 반일 카드를 또다시 꺼내 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민주당이 지난달 강행 처리한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약속 파기”라고 주장하며 공세를 펼쳤다.

○미국 의회는 AI 토론하는데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기업과 국민들의 고민과 시름이 깊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처하는 한국 국회와 미국 의회의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트먼 CEO가 참석한 AI 청문회는 미국 의회가 기술혁신이 경제와 사회에 미칠 영향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입법에 반영하려고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날 청문회에서 민주당 소속 리처드 블루먼솔 법사위 소위 위원장은 AI 복제 음성으로 개회사를 대신했다. 연설이 끝나자 블루먼솔 위원장은 “여러분이 집에서 들었다면 이 목소리가 저라고 생각했을 수 있겠지만, 이 오디오는 내 연설을 학습한 AI 음성 복제 소프트웨어였고 발언문은 챗GPT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 목소리가 재미있을 수 있지만, 만약 이것이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블라디미르 푸틴을 옹호하는 내용이라면 어땠을지 공포스럽다”고 지적했다.

AI에 대한 규제를 놓고 이날 민주당과 공화당은 초당적으로 공감했다. 올트먼 CEO도 같은 의견을 냈다. 그는 “오픈AI는 AI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측면을 개선할 것이란 믿음으로 설립됐지만 동시에 심각한 위험도 존재한다”며 “강력한 모델로서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 규제 개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오염수 괴담’ 거리에 유포

미국 의회가 의회주의를 통한 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사이 한국 국회는 갈등만 유발하고 있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은 20일 아스팔트로 뛰쳐나가기로 했다. 당내에서조차 비판이 나오자 자율 참여로 방침을 바꿨지만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저지가 장외투쟁까지 나설 문제냐는 지적이 여전하다. “또다시 반일 기치를 내걸고 지지자들을 결집해 ‘돈봉투 살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 논란 이슈를 덮으려는 것 아니냐”(비명계 중진 의원)는 지적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도덕성 파탄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가 앞장서서 갈등을 유발하는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을 두고선 간호사와 비간호사로 의료계가 완전히 갈렸다. 의사단체가 파업을 저울질하는 등 자칫하면 의료 공백으로 이어질 위기다. 의료계 내부의 갈등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야당이 일방적으로 간호법을 강행 처리한 데 따른 부작용이다. 미국 의회처럼 예상되는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국회가 사회적 비용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 이상 처리를 미루기 힘든 분야에서도 국회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열어 10개월째 활동하고 있지만 초보적인 논의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미·중 갈등에 따른 원자재 수급 위기로 정부가 시급하게 처리를 요구하고 있는 ‘공급망 안정화 기본법’도 4개월째 기획재정위 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사회적 갈등을 조율해 타협안을 만들고, 갈등이 분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정치의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노경목/원종환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