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T25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 4월 중국 국빈 방문에서 “왜 달러가 세계를 지배하나”란 깜짝 발언을 했다. 미국과 서방이 요청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도 거부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기후변화에서는 미국과 동맹이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 2월 워싱턴DC를 방문했을 때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파기한 미국과의 아마존 보호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미·중 패권전쟁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브라질과 같이 초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실용·중립 노선을 지키는 큰 나라 25개를 묶어 ‘T25(transactional 25)’라고 이름 붙였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튀르키예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등이다.

T25는 글로벌 미들파워라고 할 만하다. 인구 대국 인도부터 소국 카타르까지 다양한 T25는 세계 인구의 45%,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한다. 유럽연합(EU)보다 비중이 크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들은 초강대국에 의존하기보다 등거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국익을 극대화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실사구시(實事求是) 전략이다.

T25의 등장은 다극화하는 국제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T25에 속하지 않지만 미국의 우방국인 프랑스도 최근 T25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중국 방문 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프랑스는 미국의 속국이 아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어 네덜란드 방문에서도 “유럽은 다른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길을 걸어야 한다”고 발언을 이어갔다.

미·중 전략 경쟁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한국도 T25의 움직임을 참고할 만하다. 강대국 중에 어느 한쪽 편에 설 때는 선택비용이 든다. 다른 강대국의 반발이다. 하지만 중립이라고 무조건 안전한 것은 아니다. 특히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나라엔 허망한 전략이다. 러시아에 비해 군사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우크라이나가 이 정도로 길게 버틸 수 있는 것은 서방의 원조가 있기 때문이다.

전설리 논설위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