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화이트칼라의 종말?
인류가 탄생한 이후 지속한 가장 오래된 노동 방식은 육체노동이다. 육체노동자를 뜻하는 블루칼라(blue collar)라는 표현은 1924년 미국 지역신문 구인 광고에 처음 등장했다. 직업을 옷깃(collar)의 색깔로 분류한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청바지에 청색 셔츠를 입었다. 파란색 옷은 햇빛에 쉽게 바래지 않고, 얼룩이 묻어도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산업 고도화 시기를 거치며 블루칼라와 대조되는 직업군으로 화이트칼라가 등장했다. 관리, 기술, 사무 등에 종사하는 이들은 노동 장소(사무실), 경영상 지위(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의 지위), 직무 내용(정신노동) 등이 블루칼라와 달랐다. 옷이 더럽혀질 일이 없어 흰색 셔츠를 많이 입었기 때문에 화이트칼라라고 불렀다.

과거 경기 침체가 오면 블루칼라가 먼저 타격을 입었다. 기업들이 가장 먼저 꺼내 드는 카드가 생산 감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블루칼라보다 화이트칼라 실업 문제가 더 크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경영 환경이 나빠지자 금융·정보기술(IT) 분야에서 거센 해고 바람이 불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사라진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다시 복원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인공지능(AI)이 회계사,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인사 전문가, 변호사 등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얘기다. 신문 보도가 아니더라도 ‘AI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란 전문가들의 관측은 숱하게 나왔다. 하지만 인간은 생래적으로 낯선 변화를 두려워한다. 저무는 화이트칼라 시대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직업과 일자리는 늘 바뀌어왔다.

이미 다양한 제3의 칼라가 무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고도의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골드칼라’, 광고·디자인·패션 등 창의적인 일을 하는 ‘레인보칼라’, 친환경 업무를 담당하는 ‘그린칼라’ 등이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면 인간은 더 창의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다. 더 많은 ‘뉴 칼라’가 탄생해 인류의 삶이 다채로워지고, 풍요로워지길 기대한다.

전설리 논설위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