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소설의 바다에 빠뜨린 '고래' 그리고 부커상
지난해 ‘고래’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가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바다 속 유일한 포유류인 고래는 주인공을 상징하면서 이야기가 전개 되는 내내 주인공을 위로하고, 때로는 기발한 장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하늘을 유영하는 다양한 고래를 만나고 각기 다른 고래의 습성을 알게 되는 깨알 상식은 극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드라마가 흥행하면서 ‘고래문화특구’인 울산 남구 장생포를 찾는 관광객이 증가했는가 하면, 귀여운 고래들을 모티브로 한 소품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올해도 고래 열풍은 계속 될 것 같다. 천명관 작가님의 <고래>(2004년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가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부커상’은 1969년 영국의 부커사가 제정한 문학상으로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꼽힌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 6편 중 하나로 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선정되었다는 속보를 보고 제일 먼저 이 엄청난 이야기를 영어로 옮긴 번역가가 너무도 궁금했다. ‘대체 <고래>를 어떻게 영어로 번역했단 말인가… .’

스토리만으론 세계인이 이해할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정서와 풍경, 그리고 주인공 3대를 관통하는 역사의 흐름과 그 안에 녹아든 정(情)과 한(恨)이 타국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 되었는지 너무 궁금하고 실로 대단하다. 나의 짧은 영어실력이 원망스러울 따름…. (참, 김지영 번역가님도 작가님이십니다!)

천명관 작가의 <고래>는 나의 최애소설이자, 내가 소설에 진심이 된 그 시작이다. 소설 <고래>를 읽고 난 느낌은 한마디로 ‘충. 격.’ 충격적이었던 만큼 그 여운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내 마음속에 최고의 소설로 각인되었다.

이 소설은 이상하다. 새롭다고 하기에는 통속적이고, 개성 있다고 하기에는 기이하고, 역사적이라고 하기에는 초현실적이고, 문장이 수려하다기 보다는 평범한데 가끔은 설명 없이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양해를 구하는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갑자기 변사가 등장해 상황을 정리하는 엉뚱한 영화적 상황도 있다. 노인, 금복, 춘희로 이어지는 거대한 서사와 그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고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는 등장 인물들. 이들은 단 한 명도 허투루 등장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내기라도 하듯 이야기의 전개 방향을 예측해 보려고 하는 독자의 도전 정신은 매순간 작가의 대승으로 끝난다.

소설 고래는 1부 부두, 2부 평대, 3부 공장까지 총 세 개의 파트다. 1,2부는 산골 소녀 금복이 생선장수를 따라 마을을 떠난 후 바닷가에서 우연히 거대한 고래를 보게 된다. 이후 금복은 흘러가는 시절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나 성장하고 시련을 겪고 사랑을 하며 그녀만의 비범하기까지 한 삶을 이어간다. 마치 거대한 고래가 미지의 바다를 유영하듯이.

마지막 3부는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던 그녀의 딸 춘희가 엄마 금복이 만든, 폐허가 된 벽돌 공장에 돌아와 숙명을 받아들이는 서사다. 바다의 유일한 포유류처럼 홀로인 채로 살아가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초인적인 힘을 가진 흙수저 여성 캐릭터들이 그려내는 삶의 억척스러움은 고래처럼 경이롭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2023부커상 수상작은 5월 23일 런던 스카이가든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우리에게 부커상이 보다 가깝게 다가온 것은 2016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아시아 최
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상(2019년부터 부커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을 수상하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지난해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린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역시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는 첫 문장부터 매력적인 소설 아니었던가.

다음 주면 발표다.

상은 받으면 좋다.
하지만 받지 않아도 좋다. 이미 고래는 하늘을 날고 있으니.

그저 소설 <고래>의 리커버를 빨리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아직 <고래>를 읽지 않은 이들이 그 깊은 바다를 탐험해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