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는 집이다

멋진 집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것을 철골과 유리와 콘크리트의 합이라고 하지 않는다. 재료들은 이미 집이 되어서 완성된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도 그렇다. 관객이 듣는 음악은 집을 짓듯 복잡한 재료와 고단한 과정을 거쳐 한 사람 한 사람의 연주자들이 완성한 하나이다.
씨줄과 날줄을 엮어 옷감을 짠다. 실을 나란히 늘어놓으면 절대 옷감이 되지 않는다.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얽히고 서로 개입하는 것은 ‘쓸모 있어지는’ 과정에서 필수다. 오케스트라도 그렇다. 심지어 그것은 오케스트라의 본질이다. 우리는 매순간 갈등하며 부딪히고 동시에 조율하며 협력한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모두 참여하는 리허설 외에 삼삼오오 따로 모여 연습하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악단에 속한 단원들이기 이전에 중고등학교 때부터 선후배인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같은 직장을 다니며 개인사를 속속들이 나누고 서로를 존중하며 아낀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얼굴을 맞대고 소규모 연습을 할 때의 분위기는 조금 야릇하다.
‘쟤 3연음 왜 저래? 절뚝거리는 걸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가? 영원히 저러면 어떡하지, 돌겠네...’
‘솔 샵 음정 계속 낮잖아! 저기다 어떻게 맞추라는 거야!’
우리는 때때로 찾아오는 서로에 대한 불만에 신경이 날카롭다. 하지만 함부로 드러낼 수 없다. 음악의 완성도만큼 관계와 평판은 중요하다. 오히려 의견이 다를수록 더 친근하고 조심스러운 대화가 오간다. 그리고 이 소리 없는 전쟁의 자취는 차곡차곡 마음에 쌓인다. 연습을 마치고 인사를 나눌 때,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후배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렇게 어렵게 조금씩 나아가며 결국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기에 서로 신뢰를 잃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의도하지 않은 우리의 이중성 역시 공공연한 비밀이다. 어쩌면 그것은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숙명이다.


사소한 일로 뜨겁게 부딪히기도 한다. 시향의 주요한 기획공연 프로젝트 중 하나인 ‘찾아가는 음악회’의 경우 전체 오케스트라가 움직이기보다는 작은 편성의 여러 팀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고, 지휘자가 일목요연하게 전체 프로그램을 끌고가는 정규 연주와는 다르게 각 팀의 멤버들이 전체 레퍼토리를 정하고 조율한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을 흔히 접하지 못하는 환경, 관심이 덜한 관객을 찾아가는 일이 많다보니 갈등이 생긴다.
“지금 클래식을 대중에게 소개하자는 것인지, 대중 음악을 클래식 악기로 연주할 수 있단 걸 보여주자는 것인지…. 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넣겠다는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말을 합니까, 클래식 전공했다고 무슨 선민 의식 있는 거예요? 음악에 우열을 가리다니요. 어떤 레퍼토리가 어르신들에게 더 어필할 것 같아요?‘
두 사람은 답을 찾지 못한다. 둘 다 맞는데 타협하지 않으니 쓴웃음이 난다. 이것은 음악 외적인 자존심과 힘겨루기의 문제일 수 있고, 연습과 공연을 통해 그동안 쌓여온 음악 내적인 문제가 엉뚱한 형태로 터져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파트의 수석이 자신의 파트 단원들에게 “여러분, 좀 집중해주세요. 오늘 유난히 제각각이네요.” 하며 일상적인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그 시선이 다른 파트의 몇몇 단원들을 향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 사소한 오해는 결국 ‘간접적으로 훈계하는 것이냐, 가만히 보면 늘 그런 식이더라. 선을 넘지 말아달라’는 항의와 어이없는 싸움으로 번졌다. 이러한 갈등의 진의가 무엇인지, 오케스트라가 만드는 음악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갈등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과 음악 외부의 일이 음악 내부의 일과 복잡하게 얽혀 해프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확실하다.

오케스트라는 집이다

악장 대행 수석으로 시작해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지휘자 선생님이 흘리듯 하신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때, 할 만 해요? 단원들과는 좀 친해졌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머뭇거릴 때 선생님은 묘한 말씀을 덧붙이셨다.
“두루두루 잘 지내야지…. 그런데 너무 친해지지는 말고.”
이제는 어렴풋이 그 뜻을 헤아릴 수 있다. 우리는 팽팽해야 한다. 그 팽팽함을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서열이 불가피하다고들 한다. 구시대적이긴 하나 기강을 잡는다는 표현도 있다. 시시한 다툼에 잡아먹히거나 느슨한 동호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권위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휘자 선생님이 미숙한 나에게 그런 책임을 상기시키려 하신 것 같지는 않다. 각 분야에서 전문성과 자부심을 갖춘 단원들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거침없이 갈등하는 것, 공평하게 힘을 분산하여 균형을 이루는 것에 관한 조언이 아닐까 한다.


오케스트라는 집과 같다. 건물을 떠받치는 골조, 아름다운 조명과 벽지, 기능적이며 튼튼한 배관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 이질적인 재료들이 제자리를 찾아 얼마나 튼튼한 구조를 이룰 것인지, 어떻게 조화롭고 근사한 집으로 완성될 것인지 항상 궁금하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갈등’하고 때로는 ‘수용’하며 ‘하나’를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