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문재인 정권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과 국책연구기관의 대세는 ‘증세론’이었다. 보편복지에 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나랏돈으로 긴급 재난지원금을 뿌리던 코로나19 상황도 반영됐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이던 윤후덕 의원은 증세 공론화를 정부에 공개 요구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어 민주당이 야당이 되자 선심성 감세 포퓰리즘에 빠졌다. 세금을 깎아주자는 입법을 남발하고 있다. 올해 들어 5월 첫째주까지 민주당(116개)이 발의한 감세 법안은 여당인 국민의힘(68개)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같은 포퓰리즘 감세 입법은 정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兆 단위’ 선심성 감세 법안 속출

여야, 선심성 입법에 원팀…세법 개정안 92% '稅감면'
지난 2월 박성준 민주당 의원은 초등학교 취학 전 아동에게 적용되는 교육비(학원·체육시설) 세액공제 혜택을 18세 미만으로 확대하자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교육비 공제 한도는 현행 3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두 배로 올리자고 했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5년간 국세 수입이 연평균 1조1127억원, 총 5조5635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징수해야 할 세금을 안 걷는 조세지출 방식으로 사실상 돈을 뿌리는 것이다. 혜택 대상을 대폭 늘린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묻지마 감세”라는 비판과 함께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같은 당 이수진 의원(비례)은 최저임금의 두 배 이하인 선원 임금에 대해 아예 비과세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최근 내놨다. 이 법안은 소득세수를 5년간 2954억원 감소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다른 해외 근로자와의 과세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개정된 소득세법에 따라 올해 적용되는 전체 소득세 조세지출 규모는 약 40조400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김경만 민주당 의원은 주택·농사용 전기와 주택용 도시가스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를 내년까지 아예 ‘0%’(영세율)로 하자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2년간 3조5455억원이 드는 법안이다.

한 세제 전문가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전기·가스요금에 반영하지 않은 채 부가가치세를 깎아주는 식으로 서민 부담을 줄이겠다는 건 조삼모사”라고 비판했다.

○표 많고 규모 크면 ‘벌떼 발의

관련된 표가 많고 깎아주는 세금 규모가 큰 세법 개정안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벌떼 발의’를 하기도 했다. 농림·어업에 쓰이는 석유류에 면세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제한법이 대표적이다.

이 조항은 올해 말 일몰이 종료되는데, 일몰을 연장하고 면세 규모를 확대하자는 내용의 개정안을 국민의힘과 민주당 의원 여섯 명이 저마다 대표 발의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개정안에 따르면 일몰이 5년 연장되면 6조8854억원의 국세 수입 감소가 예상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 특례에 대해 “농가 소득 증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며 일몰 연장에 부정적 평가를 하기도 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같은 당 의원끼리는 협의해 단일안을 충분히 낼 수 있다”며 “의원 개인의 입법 성과를 올리는 데 매몰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

총선을 앞두고 발의되는 이 같은 개정안들이 통과되면 세입 기반을 약하게 해 재정건전성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올 1분기까지만 해도 세수 감소에 따른 나라살림 적자 규모가 54조원에 달했다.

재정건전성을 방어할 재정준칙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관료 출신 세제 전문가는 “재원이 한정된 만큼 경제 선순환 효과를 극대화할 분야에 세제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재영/원종환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