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웬 존스의 그랜드 투어, <장식의 문법>

오웬 존스 '카이로 근처의 무덤'(왼쪽, 1832~33)과 '이집트'(오른쪽, 1832~1833).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소장

영국은 1851년 만국박람회 개최 직후 전 세계의 산업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통합된 우수한 디자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경쟁국이었던 프랑스뿐 아니라 원시 부족의 공예품보다도 못하다는 것이었다. 영국 정부는 디자인 개혁을 통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다.

웨일스 출신의 건축가이자 이론가였던 오웬 존스(Owen Jones, 1809~1874)는 디자인 개혁의 중요 인물 중 하나였다. 존스는 조지프 팩스턴(Joseph Paxton, 1803~1865)과 함께 만국박람회 전시장인 수정궁 내부를 디자인했고, 박람회 종료 후에는 수정궁을 이전, 재건하는 공사의 건물 장식 감독을 역임했다. 존스는 1856년 저서 <장식의 문법(The Grammar of Ornament)>을 통해 박람회에 전시되었던 세계 각국의 장식을 정리했다. 그런데 존스가 이슬람 문화와 유럽 문화가 융합된 무어(Moorish) 건축 장식으로부터 장식의 원리와 관련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랜드 투어 1832~34

존스는 스무 살이 되던 1830년경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그로부터 3년 뒤에는 그리스, 이집트, 터키, 그리고 스페인 그라나다로 소위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떠났다. 그랜드 투어는 17세기 중반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상류층 자제가 사회에 진출하기 전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돌아보며 문물을 익히는 여행을 일컫는다. 이 여행을 통해 여행자들은 유럽의 문화와 예술, 역사적인 유산을 탐방하고, 지중해 지역의 해변과 산악 지형을 감상하며, 유럽 국가의 주요 인사와 사교적 관계를 통해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존스의 그랜드 투어는 건축 장식 관련한 자료를 치밀하게 수집, 정리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되었다. 지금 같으면 카메라로 쉽게 기록할 수 있었겠지만, 존스에게 허락된 자료 수집의 방법은 관찰을 통한 사생과 석고로 본을 떠 오는 것뿐이었다. 존스는 “예술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장식 미술은 직접 보고,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 중에서도 스페인 그라나다에 위치한 알람브라 궁전의 장식 미술은 그의 장식론에 핵심적인 영향을 끼쳤다. 알람브라 궁전은 1238년부터 1358년 사이에 축조된 아랍 군주의 저택으로, 타일, 석조, 목조, 천장 장식, 금박, 모자이크 등의 기하학적 장식이 특징이다. 존스가 방문했을 때, 그도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살과 바닷바람에 더해 알람브라 궁전의 신비롭고 우아한 무어 장식의 매력에 흠뻑 빠졌을 것이 분명하다.
오웬 존스의 그랜드 투어, <장식의 문법>
줄스 구리와 오웬 존스의 '알람브라 궁전 세부 드로잉'(1833~1837).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소장

존스는 프랑스 건축가 줄스 구리(Jules Goury, 1803~1834)와 함께 알람브라 궁전 연구를 6개월간 진행했다. 존스와 구리는 건축물에 아랍어로 새겨져 있는 명문을 영어로 번역했고, 알람브라 궁전의 역사도 조사했으며, 수 백점의 근경, 원경 및 세부 장식 드로잉과 평면도도 제작했다. 어찌나 정교한지 누구든 이 도면만 있다면 어디에든 알람브라 궁전과 똑같은 건축물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리는 타지에서 콜레라로 사망하고 말았다. 존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귀국 후 알람브라 궁전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존스는 다채로운 색상의 기하학적 장식을 자신이 보고 느꼈던 그대로 소개하고 싶었지만, 당시의 인쇄 기술은 이를 구현할 만큼 정교하지 못했다. 존스는 더 나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인쇄 기술이었던 다색 석판화 기법(chromolithography)을 연구했다. 그 결과 1837년 출판된 존스의 청년기 저서 <알람브라 궁전의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와 세부 사항(Plans, Elevations, Sections, and Details of Alhambra)>은 화려한 색상과 정교한 세부 묘사를 포함할 수 있었다.

<장식의 문법> 구성 및 도판

오웬 존스의 그랜드 투어, <장식의 문법>
오웬 존스 '<장식의 문법>의 드로잉 원본, 무어 장식 No. 5, XLIII'(1856).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소장

존스는 알람브라 궁전과 관련한 책을 세상에 내어놓고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인 1856년 <장식의 문법>을 출판하게 된다. 이 책은 사실 국가적인 프로젝트였다. 19세기 중반, 산업화라는 렌즈로 바라본 전지구적 지도, 만국박람회의 전시 분류가 바로 <장식의 문법>의 청사진이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존스는 책의 전반부에 ‘건축과 장식미술에 있어 형태와 색 배열의 일반 원칙’이라는 37항의 ‘일반 원칙’에 관해 기술했다. 존스는 미래의 디자이너들이 시각적인 부문에서 미적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보편적 지침을 제공하고 싶었다. 이에 더해 존스는 다색 석판화 기법으로 제작한 100점에 달하는 컬러 도판과 이에 관한 설명을 추가했다. 15장까지는 원시 부족의 장식, 이집트, 아시리아와 페르시아, 그리스, 폼페이, 비잔틴, 아라비아, 터키, 알람브라 궁전, 페르시아, 인도, 힌두, 중국, 켈트까지 지정학적 구분에 따른 내용이었다.

이 때 원시 부족의 장식을 탐구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선구적이었다. 존스는 “우리는 최고로 발달한 문명권의 많은 장식품보다 오히려 원시 부족의 초라해 보이는 장식을 보면서 인간의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고 기술했다. 15장까지가 지리적 결정론에 따른 구분이었다면 16장부터 18장까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분류에 따른다. 예를 들면 중세, 르네상스, 엘리자베스 시대로 구분한 것이다. 제19장은 이탈리아, 마지막 제20장은 자연의 잎과 꽃이라는 식물 모티프에 관한 설명이다.

각 장에서 제시하는 장식의 이미지는 대표적인 사물에서 차용했다. 예를 들면 그리스와 로마의 경우는 모자이크에서, 셀틱의 경우는 필사본에서, 중세의 경우는 회화와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코란의 경우는 필사본에서, 터키의 경우는 모스크 및 무덤 장식에서 원용해 이를 도식화했다. 인도의 경우 직물, 중국의 경우 자기, 그림, 직물, 나무 상자의 표면에 그려진 패턴들에 의존했다. 존스가 직접 갈 수 없었던 곳에 관해서는 1851년과 1855년 만국박람회에 출품되었던 사물을 관찰, 연구한 결과로 갈음했다. 하지만 무어 장식의 경우만큼은 알람브라 궁전을 방문했을 때 수집했던 건축물의 장식 표본 및 자료를 활용했다.

새로운 미학적 기준

오웬 존스의 그랜드 투어, <장식의 문법>
오웬 존스 '연꽃 패턴'./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소장

<장식의 문법>에 수록된 장식 패턴은 근대 사회의 새로운 조형 원리로 수용될 수 있어야 했다. 이에 기하학 및 평면성을 강조한 무어 장식은 존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존스는 단순 요소의 반복이 만들어 내는 보편적 효과가 성공적인 문양의 조건이라고 했다. 존스는 선과 선이 만나는 지점 또는 선의 방향과 관련하여 더 아름답게 지각되는 비율, 방향, 방법들을 기술했다. 기하학적인 패턴이 산업 디자인에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음도 명확히 했다.

모자이크는 무한 확장할 수 있어 타일이나 벽지처럼 건축 장식과 관련된 산업 제품 디자인에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었다. <장식의 문법>에서 언급하는 ‘장식’은 텍스타일, 벽지, 카펫, 달력 디자인 등 평면 매체에 더욱 적합했던 것이다. 존스는 궁극적으로 모든 장식이 ‘기하학적 구축’으로 환원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존스는 “모든 형태의 기본은 기하학이며 대칭과 균형의 결과”라고 했다. 이는 삶의 공간으로부터 시각적 즐거움을 얻는 경험에 관해 기술한 선구적인 예이다.

존스는 모든 장식은 그 자체의 규칙을 함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장식의 원리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예가 알람브라 궁전이라고 했다. 존스는 무어 장식은 불필요하거나 추한 부분이 없고, 대조와 균형이 잘 이루어져 시각적으로 좀 더 많은 즐거움을 주며, 자연의 법칙을 받아들였으되 모방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출판된지 약 150년이 지난 지금의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패션, 장신구, 인테리어 등 각종 디자인 영역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개인이 소장하고 싶어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것 같은 경험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력적이다. 19세기 초 미지의 장소에 도착해 집요하게 관찰하고 궁전의 곳곳을 그림으로 옮기고 있는 존스의 청년기 모습도 책의 곳곳에 배어 있다. 존스는 이 책을 보고서 또는 이론서와 같은 형식으로 출판했지만, 우리는 이 책으로부터 보았던 어떤 것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자신의 젊은 시절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

(이 글은 필자의 논문 ‘오웬 존스의 <장식의 문법> 고찰’을 각색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