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LA 컨피덴셜'.
영화 'LA 컨피덴셜'.
많은 사람들이 다소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 바, 여배우가 가장 예쁠 때는 20대가 아니다. 사실은 30대도 아니다. 40대다. 이때가 가장 꽃을 피운다. 성숙미가 최고조일 때다.

물론 그건 사람마다 다 다른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이가 들어서 아름다움의 물이 오르는 미녀가 진짜 미녀다. 킴 베이싱어가 그런 여배우다.

이제는 잊혀진 이름 킴 베이싱어. ‘나인 하프 투 윅스’ 때문에 육감적 여배우의 선두주자를 달렸다가 언제부터인지 대중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간 배우. 젊은 세대들은 아마도 그녀를 할머니 배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올드 팬들, 혹은 영화 마니아들이 꼽는 자신의 '베스트 톱10 영화'에 킴 베이싱어가 나오는 영화가 자주 들어간다. ‘LA컨피덴셜’이다. 1998년에 커티스 핸슨 감독이 만들었다.

지금은 커티스 핸슨 감독은 죽었고, 주요 배우로 나왔던 러셀 크로우는 몸집이 하마보다 커져서 이제는 거의 밀려났으며, 한 때 무지하게 잘 나가던 배우 케빈 스페이시는 '미 투' 스캔들로 업계에서 완전히 퇴출됐다. 킴 베이싱어도 그렇게 옛날 사람이 됐다.
영화 'LA 컨피덴셜'.
영화 'LA 컨피덴셜'.
'LA 컨피덴셜'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오래 기억하는 건 순전히 킴 베이싱어의 마지막 대사 때문이다. 영화 속 린, 베이싱어는 자신이 관계했던 두 남자 사이에 서서, 한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차 안에 부상을 당한 채 앉아 있는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이고, 마주 서 있는 남자는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남자는 자신을 지켜주고, 좋아하는 남자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고, 린은 생각한다. 둘 다 경찰이다.

그녀는 속삭인다.
“어떤 남자는 세상을 얻고 누구는 전직 창녀와 애리조나로 떠나는군요.(Some men get the world, Others get ex-hookers and a trip to Arizona)”

좀 더 직역을 하면 '어떤 남자는 세상을 얻고 어떤 남자는 아리조나로 떠날 창녀를 얻었군요'이겠다. 경사 엑슬리(가이 피어스)는 권력을 잡았고 형사 버드(러셀 크로우)는 여자의 사랑을 차지한 셈이다.

이 대사를 할 때의 킴 베이싱어는 45살이었다. 킴 베이싱어는 노란 색 뷔스티에 원피스를 입고 다소 쓸쓸한 표정으로, 그러나 이제는 안심이라는 듯이, 저 남자만큼은 내 거라는 듯이 말한다. 실로 아름다운 자태이고 영화사에 남는 장면이다.

킴 베이싱어는 ‘나인 하프 투 윅스’로 육체적 명성을 얻었지만 상대역 남자 배우미키 루크가 일찍이 성형 중독으로 인기가 무너질 것이라는 점을 인식한 듯 진작부터 (다들 믿지는 않겠지만) 외모를 버리고 연기력을 선택한 배우다.

그녀는 1987년(34살)에 나왔던 ‘노 머시’에서 조직 보스의 여자 미셸로 나오는데 어릴 때 끌려 와 성적 유린을 당하면서 교육을 받지 못해 문맹인 상태다. 그녀는 형사 질레트(리처드 기어)와 함께 쓰는 진술서 합의서에 이름 대신 앵무새를 그린다. 여자의 어깨에는 앵무새 타투가 있고 남자 질레트는 그런 그녀에게 반한다.

글을 못 읽고 쓰지 못하는, 앵무새 타투가 있는 여자. 섹시하고 요염한데 아는 것이 없고, 그것이 불운했던 과거 때문인데 이상하게 그게 밉거나 저급하게 느껴지지 않는, 그래서 오히려 가여운 백치미의 느낌을 주는 여자가 바로 킴 베이싱어였다. 그것도 20대가 아니라 30대에.
여배우의 '화양연화'는 40대…이걸 증명한 킴 베이싱어
백인 랩 가수 에미넴이 주연을 맡은 2003년작 ‘8마일’에서 킴 베이싱어는 아들의 친구와 살면서 소파에서 섹스를 하는 다소 정신 나간 엄마 역으로 나온다. 이 영화가 킴 베이싱어 연기의 중간 전환점이었으며 이후 2004년 토드 윌리엄스가 만든 우리 말 제목이 다소 선정적인, ‘킴 배신져의 바람난 가족’, 원제는 ‘더 도어 인 더 플로어(The door in the floor)에서 절정의 연기와 처연한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당시 쉰이었던 킴 베이싱어는 이때 가장 아름다웠다. 여자가 늙어 간다는 것이 결코 아름다움과 배치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으며. 여자가 45~55세 때 가장 절정이라는 것을 증명해 냈다.

‘바람난 가족’에서 킴 베이싱어는 아이를 잃고 남편의 조수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여인으로 나온다. 제목이 이렇게 붙었던 데는 당시가 비디오 시대의 끝물이었고 마침 그 즈음에 임상수 감독, 문소리 주연의 ‘바람난 가족’이 인기를 모았었기 때문이다.

나이 70이 된 킴 베이싱어는 서서히 은막에서 멀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작이 2017년에 나왔던 ‘50가지 그림자 : 심연’이다.

당신이라면 권력과 신분 상승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LA컨피덴셜’의 린과 같은 여인과 아리조나로 떠나는 것을 선택하겠는가. 당연히 그것은 당신이 알아서 할 것이겠지만 인간의 존재 목적은 생존이 아니라 삶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한줌의 권력이 아니라 진짜 나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과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동의하거나 말거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