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배터리 단 현대차, 美 전기차 보조금 못 받는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생산하는 제네시스 GV70 전기차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지급 대상 차량에서 제외됐다. GV70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해야 한다는 기본 요건을 충족하면서 지난달 말 한국 전기차로는 처음 세액공제 적격 목록에 이름을 올렸지만, 18일부터 배터리와 관련해 강화된 IRA 세부 지침이 시행되면서 다시 보조금이 끊기게 됐다.

새 지침에 따라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차는 기존 39개 차종에서 22개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닛산·아우디·BMW·폭스바겐 등 해외 업체 차량이 모두 제외됐다.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만 남았다.

미국 브랜드 전기차만 수혜

미국 에너지부는 이날부터 시행하는 IRA 세부 지침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전기차 대상 차종을 1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발효된 IRA는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해 세액공제 형태로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작년 8월부터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만 하면 보조금 수령 대상이었지만 이달 18일부터 배터리 핵심 광물과 부품 요건도 충족해야 받을 수 있다. 전기차에 들어간 배터리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추출·가공한 핵심 광물이 40% 이상 들어가야 3750달러, 북미에서 생산·조립한 부품을 50% 이상 써야 3750달러를 받는다.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이날 발표된 보조금 적격 전기차는 절반으로 줄었다. 하루 전까지도 보조금 대상이었던 GV70와 아우디 Q5, BMW X5, 닛산 리프 등 21개 차종이 목록에서 빠졌다. 리비안을 제외하면 모두 미국 외 브랜드다.

GV70에 들어가는 SK온의 배터리는 배터리 셀을 중국에서 제조한다. 이 때문에 최종 생산지는 미국인데도 ‘중국산’ 딱지가 붙어 이번 보조금 대상에서 빠졌다. 중국을 전기차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미국 IRA의 타깃이 된 것이다.

보조금을 받는 전기차는 캐딜락과 쉐보레, 크라이슬러, 포드, 지프, 링컨, 테슬라 등 7개 미국 브랜드의 22개 차종이다. 테슬라의 모델 3 퍼포먼스, 모델 Y 전체 트림과 쉐보레 볼트, 포드 F-150 라이트닝 등 13개 차종은 7500달러 전액을, 테슬라 모델 3 스탠다드와 포드 머스탱 마하-E, 지프 랭글러 등 7개 차종은 3750달러를 받는다. 미국 브랜드에 수혜가 집중되면서 업계에선 전체 전기차산업 발전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티븐 센터 기아 미국판매법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단기적으로 전기차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며 “전체 산업에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했다.

현대차 “배터리업계와 협력”

현대차·기아는 향후엔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 완공할 예정이던 미 조지아주 전기차 신공장은 2024년 하반기로 일정을 앞당겼다. 8월 조기 가동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아는 기존 조지아 공장에서 내년 상반기부터 EV9 현지 생산을 시작한다.

배터리업계와 적극 협업해 세액공제 요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공급망 개편도 논의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업체는 이번 보조금 대상 전기차 22개 중 17개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쉐보레는 LG에너지솔루션이, 포드는 SK온이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를 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도 미국 내 배터리 수급을 늘리기 위한 방안을 검토 중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전기차와 배터리 경쟁력에는 큰 타격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전반적으로 세액공제 대상이 축소돼 한국 자동차업계의 미국 시장 내 경쟁 측면에선 크게 나쁘지 않다”며 “배터리 수출에선 한국 3사에 큰 기회”라고 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경쟁모델인 테슬라 모델 X, BMW X5도 세제 혜택에서 제외됐다”며 “지금도 이들보다 30%의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 EV9이 미국에서 생산돼 3750달러의 보조금을 받는다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빈난새/김일규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