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지금은 미국과 '전략적 파트너십' 필요"
"마크롱, 미중 동등취급 오류"…대안없는 '전략적 자율' 비판도
러 위협받는 동유럽, "미 졸개 안된다" 마크롱 발언에 반발
미·중 대결 속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며 유럽연합(EU)이 미국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동유럽 국가들의 반발이 거세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11일(현지시간) 사흘 일정으로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미국으로부터 전략적 자율성을 구축하는 대신 미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 반박한 셈이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5∼7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진행된 언론 인터뷰에서 세계 패권 다툼 아래 유럽이 전략적 자율성을 갖춰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당시 그는 "유럽이 직면한 큰 위험은 우리와 무관한 위기에 말려들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두 초강대국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면 우리는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을 구축할 시간이나 재원을 갖추지 못한 채 미국에 종속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유럽이 '신하'가 돼선 안 되며 대만을 둘러싼 문제에서 유럽인이 '졸개'가 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라비에츠키 총리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 외교 관계자들은 유럽이 미국과 멀어져선 안 된다며 마크롱 대통령의 주장과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동유럽 국가 고위 외교관은 "현재 지정학적 변화의 세계에서,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벌인 전쟁에 직면한 상황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동유럽 국가 외교관도 "우리는 이 어려운 상황 속 대서양 연안 국가 간 관계에 대한 (마크롱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EU로서 단결해야 한다.

이번 (마크롱의 중국) 방문과 프랑스의 발언은 안타깝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마크롱이라고 밝힌 한 고위 외교관은 "마크롱(대통령)이 EU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 견해를 표명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러 위협받는 동유럽, "미 졸개 안된다" 마크롱 발언에 반발
동유럽 국가들의 이 같은 반응은 유럽의 자율성 등을 둘러싼 유럽 국가 간 오랜 의견 분열을 보여준다고 폴리티코는 평가했다.

프랑스는 이전부터 유럽이 미국 등 타국에의 의존도를 줄이고 경제적, 군사적 자주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으나 동유럽 국가 여러 곳은 해당 행보가 미국을 소외시킬 수 있다며 우려해왔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만큼 러시아의 위협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미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게 이들 국가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발언에서 미국과 중국을 같은 선상에 놓은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앞서 발언했던 동유럽 측 고위 외교관은 "미국과 중국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EU가 두 나라 모두와 전략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미국과 다수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중국과 대만의 양안 관계 긴장 등을 민주주의에 대한 권위주의 체제의 위협으로 간주하는 만큼 미·중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자는 발언은 적절하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에스토니아 싱크탱크 국제국방안보센터(ICDS)의 외교 정책 프로그램 책임자 크리스티 라이크는 동유럽 국가들이 마크롱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가 미국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에 대해 함구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위협이 불거지고 유럽이 안보와 국방 등 분야에서 미국에 크게 의존하는 지금, 미국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경우 미국의 자리를 어떤 국가가 대체할 수 있을지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라이크는 마크롱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유럽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면, 그는 프랑스가 러시아에 맞서 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맡아서 할 의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