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변변찮은 실력이 드러나는 것만큼 민망한 일도 없다. 보잘것없는 밑천은 종종 인생의 ‘종합 계산서’로 마지막 순간에, 속속들이 만인에게 공개된다. 저서 한 권 없는 교수, 내세울 만한 실적이 없음에도 “나 때는 말이야”만 반복하는 전직 임원, 마지막 순간에 총구를 돌려 자결에 실패한 패장(敗將)처럼…. 얼마 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서 한국 야구의 참담한 실상이 폭로된 것도 비슷한 사례다.

지난주 막을 내린 WBC 대회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진, 기초적인 주루플레이 실수를 연발하는 주자를 보며 실력과 기본기의 중요성을 많은 이가 뼈저리게 떠올렸다.

'실력'만이 결과 보장

비록 결과가 더디게 나올 수는 있어도, 기본기를 다진 노력은 끝내 결실을 본다는 점도 보여줬다. 고교 야구팀 3940개, 등록 야구선수 15만 명에 달하는 탄탄한 저변과 메이저리그 스타조차 수도승처럼 야구에만 매진한 노력을 발판으로 오랜 기간 기초부터 탄탄히 다졌던 일본은 전승 우승을 거뒀다.

반면 한 수 아래라던 호주한테 덜미를 잡히고, 일본에 9점 차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으며 3회 연속 본선 1라운드 탈락한 한국 야구팀은 ‘겉멋’에 취해 ‘거품’ 속만 헤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경우의 수를 꼽으며 ‘한 방’에 판을 뒤집을 요행을 바라는 것은 다 실력이 없어서다. 그런데 실속 없는 과대평가가 만연한 것이 과연 야구뿐일까. 기약 없이 노력을 반복하는 인내, 성실하게 벽돌을 한 장씩 쌓아가는 축적의 과정 없이 그럴싸한 과실만 손쉽게 취하려는 행태를 주변에서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전면에 부상한 소위 ‘주 69시간 근로제’ 논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근로 시간 개편안은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초장기 노동’ 가능성에 묻혀 무의미한 논쟁만 반복됐다. 개편안 반대론자들은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기’는 비현실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그런 주장 근저에 과연 잠을 덜 자고, 땀을 더 흘려서 무엇인가를 이루기보다는 적당히 업무를 ‘때운’ 뒤 대우는 최고 수준으로 받고 싶다는 욕망이 깔리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성공에 지름길은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한 국가 혹은 한 기업의 성장과 생산은 근로자 수와 근로 시간, 생산성의 단순한 곱셈공식으로 결판난다. 근로 시간이 주는데 생산량을 맞추려면 생산성을 높여야만 한다.

말이 쉽지, 남들보다 혹은 과거의 자신보다 120~130% 성과를 내는 것은 정말로 지난한 일이다. 시간을 더 투입하지 않고 결과를 내는 마법 같은 ‘한 방’은 정말 찾기 힘들다. 무엇보다 내가 하기 싫다고, 타인이 경제적·사회적 성취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을 제도적으로 못 하게 틀어막아서야 되겠나.

사기꾼은 듣기 불편한 진실이 아니라 일확천금의 꿈, 장수의 보장, 안락한 사후세계의 약속처럼 듣고자 하는 것만 말하며 사람을 꾄다고 한다. 선진국보다 일을 덜 하고, 비효율적으로 작업하면서 1인당 3만~4만달러 소득을 유지하는 것은 신기루일 뿐이다. 당장 편해지자고 사탕발림에 넘어가면 결국엔 이자까지 잔뜩 붙은 ‘계산서’가 돌아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