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히어라/사진=넷플릭스
배우 김히어라/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인물을 단 한 사람만 꼽으라 한다면 김히어라가 아닐까. 뮤지컬로는 이미 탄탄한 입지를 굳혔지만, '더 글로리' 전까지는 한 작품 속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하나로 이제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던 김히어라는 '더 글로리'를 통해 미친 연기력이라는 평가받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데 성공했다. 김히어라도 "이전까진 그냥 막 돌아다녀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는데, 요즘은 뒷모습만 봐도 달려와서 아는 척해주신다"며 "어딜 가도 서비스도 받고, '팬이다'고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달라진 일상을 전했다.

'더 글로리'는 학폭으로 영혼까지 망가진 한 여성이 인생을 걸고 준비한 복수를 펼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김히어라가 연기한 이사라는 학폭 가해자 일당 중 하나. 아빠가 대형 교회 목사님으로 풍족하게 자랐고, 성인이 된 후에도 주일에는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화가로 우아하고 고상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실체를 살펴보면 어릴 때부터 자기보다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고, 약을 하면서 자기 멋대로 살아온 인물이다.

파트1에서 교회에 찾아온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에게 "너네 주님 개 빡쳤어. 너 지옥행이래"라는 얘기를 들은 후 육탄전을 벌이고, 파트2에서는 약에 취해 바닥을 기는 이사라의 모습은 '더 글로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난 너에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받았다"면서 신을 앞세워 죄의식 없이 살아가던 사라의 모습으로 공분을 자아냈던 김히어라는 "'더 글로리' 합류 소식을 듣고 기쁨의 눈물이 나왔다"며 "'오열'은 아니고, '찔끔' 정도였다"고 귀엽게 말하면서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이전부터 매체(영화, 드라마)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잘 되진 않았어요. 뮤지컬 작품이 늘어나면서 바빠졌는데, 30대가 되니 스스로 지치기도 하고, '딱 1년만 쉬면서 제대로 오디션을 봐보자' 싶더라고요. '더 글로리'는 JTBC '괴물'에 단역으로 하나 나왔을 때 오디션을 본 거였어요. 오디션이라는 게 답이 오기까지 과정이 힘들거든요. 그런데 여긴 시원시원했어요. 오디션 보고 집에 오니 '퀵으로 대본 보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에 대한 확신이 덜해졌을 때, '이게 맞나' 싶을 때, 결과물도 나오지 않았을 때, 그렇게 바로 피드백을 주시니까 보상받는 느낌이었어요."
배우 김히어라/사진=넷플릭스
배우 김히어라/사진=넷플릭스
실제의 김히어라는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짜증나" 정도의 욕을 하긴 하지만, 사라와 같이 살벌한 욕도 살면서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교회 지하 예배당에서 마약에 취하는 '약쟁이' 사라를 연기한다는 것이 부담될 법 했지만 "신인인데도 오히려 배려를 많이 받았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촬영에 앞서 최종적으로 미팅하면서 '사라가 해야 할 것도 많은데, 배우로서 표현하기 싫은 부분이 없냐'면서 정중하게 물어보셨고, '어려운 게 있다면 수정하겠다'고 해주셨어요. 그러면서도 저의 눈빛과, 이러이러한 것들이 좋아 같이 가고 싶다고 해주셔서 많이 감동했어요."

영화 '부당거래' 속 류승범의 말투를 비롯해 '신세계' 등 조폭들이 나오는 누아르 장르의 영화를 챙겨보고, 마약 다큐멘터리 등을 보며 사라 캐릭터를 구축해간 김히어라는 "처음엔 대본만 봤을 땐 사라가 러블리해서 저와 맞지 않는다 생각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오디션장에서 처음 받은 대본이 손명오(김건우 분)가 사라진 후 그의 집에서 최혜정(차주영 분)을 만나는 장면이었는데, "뭐 하는 중?"라고 쓰인 대사를 보고 '이건 뭔가 러블리한 아이가 해야 할 거 같다'고 생각했다는 것.

"사라보다는 연진의 대사가 입에 착착 붙더라고요.(웃음) 세보이고요. 그래서 '난 연진이겠구나' 싶어서 연진이 중심으로 준비를 했는데, 사라를 읽으라고 하셔서 처음엔 당황했어요."

자신과 다른 모습이 많은 사라였지만,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는 게 김히어라의 설명이다. 표현의 수위에 대해서는 '너무 과한가?', '약한가?'를 고민했지만,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많고, 제 연기로 사라가 시청자들에게 정당화되지 않았으면 했다"는 게 김히어라의 사라에 대한 접근이었다.

"드라마가 잘 될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세계적으로 파장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아마 동은이의 복수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응원하고 싶기 때문인 거 같아요. 동은이처럼 움직여서 복수하는 건 현실적이지도 않고, 동은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것도 많잖아요. 이 작품을 통해 이제부터라도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을 책임질 어른들이 이런 잘못된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해요."

'더 글로리'를 통해 김히어라 자신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학창 시절에 대해 "이미 20년 전이긴 하다"고 웃으면서도, "지금은 오은영 선생님도, 강형욱 선생님도 계셔서 '폭력은 절대 안 된다'라는 것에 대해 모두 인지하지만, 그땐 저도, 어른들도 예민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 제가 이런 배움을 받고, 그 시간을 살아냈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며 "그래도 그런 시행착오를 겪고, 이런 작품을 만나면서 많이 성장했다. 무지했던 부분들을 많이 알게 했다"면서 고마움을 드러냈다.

학교 폭력뿐 아니라 김히어라가 '더 글로리'에서 시청자의 마음으로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동은과 어머니의 관계였다. "대본을 봤을 때보다 완성된 화면을 봤을 때 더 충격적이었다"면서 "해준 거라고는 낳아준 거 하나밖에 없고, 자퇴서도 돈을 받고 바꿔주지 않나. 엄마 때문에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니지만, 동은이를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없었다는 점에서 다른 가해자들이 함부로 했던 부분이 된 거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배우 김히어라/사진=넷플릭스
배우 김히어라/사진=넷플릭스
사라와는 다른 점이 더 많아 보이지만, 강력하게 일치하는 부분이 '그림'이다. 김히어라 역시 시간이 날 때면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고, 작품 속 그림들도 직접 작업했다. "프로는 아니고, 그림으로 일기는 쓰는 편"이라며 겸손하게 그림 실력을 소개했지만, 이미 전시회도 진행하고, 인터뷰에 참여한 기자들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만든 엽서와 자석을 선물하면서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는 모습에서 '더 글로리' 속 화가 사라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감독님께서 '직접 그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사라를 분석하면서 드로윙을 했어요. 두 달 정도 시간 동안 많이 그렸는데, 감독님이 보시더니 '미안한데,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이 원한 건 거친 터치감이 드러나길 바라셨는데, 저는 너무 세밀한 거죠. 그래서 디자인을 다른 분께 맡기고, 그 위에 덧칠하는 방식으로 했어요."

'더 글로리'를 통해 화려하게 올해를 시작한 김히어라다. 그러면서도 김히어라는 자신이 '더 글로리'의 애청자임을 자처했다.

"저희는 모든 배우가 애드리브가 하나도 없었어요. 대본에 나온 대로, 계획한 대로 찍었어요. 파격적인 복수를 할 거라는 걸 알고 시청했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저랑 맞붙지 않는 배우들도 연기를 너무 잘해서 누군지 찾아볼 정도였어요. '더 글로리'는 학폭뿐 아니라 부모, 선생님, 그리고 소외계층을 다루는 다양한 시선도 보여줬어요. 저 역시 많이 배웠고, 너무 좋았어요. 주여정(이도현 분)과 동은의 멜로도, 시청자도, 동은이도 숨 쉴 수 있는 구멍이 됐다고 생각하고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