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이재용 회장의 '친구론'
2021년 9월 미국 제4 이동통신 사업자 디시네트워크의 찰스 에르겐 회장이 방한했을 때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에르겐 회장과 북한산을 함께 올랐다. 당초 월요일 비즈니스 미팅이 잡혀 있었으나 하루 전인 일요일 동반 산행을 제안해 성사된 것. 에르겐 회장은 험준한 로키산맥과 에베레스트, 킬리만자로 등 세계의 고봉(高峰)을 두루 오른 전문가급 등산 애호가다. 5시간가량 산행을 함께한 두 사람이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결국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디시네트워크의 대규모 5G(5세대) 통신장비 공급사로 선정됐고, 최근 초도망 개통을 완료했다.

삼성이 2020년 9월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과 7조9000억원 규모의 5G 통신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한 것도 한스 베스트베리 최고경영자(CEO)와 이 회장의 친분 덕분이었다. 2010년 스페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그 뒤로도 꾸준히 친분과 신뢰를 쌓아왔다고 한다.

이 회장의 글로벌 인맥은 다양하다. 마크 저커버그(메타), 제프리 이멀트(GE), 팀 쿡(애플), 일론 머스크(테슬라) 등 기업 CEO와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세계 정·재계 리더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의 밤’ 행사 땐 “가만히 있어도 아는 분을 20~30명씩 만나게 된다”며 글로벌 CEO들의 명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이 ‘2030년 부산세계엑스포’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것도 이런 인적 네트워크 덕분이다. “살아보니까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敵)은 적을수록 좋더라”라는 이 회장의 말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다. 이 회장은 지난 17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미국 반도체 보조금 문제에 대해 한·일이 함께 협력해 대응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자기 주장만 고집하면서 걸핏하면 남과 싸우고 적을 만드는 사람과,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하며 배려하고 자기편을 만드는 사람 중 누가 경쟁에서 이길지는 불문가지다. 사람이 재산이라고 하지 않는가. 기업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