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매체인 이코노미스트가 “인고지능(AI) 도입으로 인한 일자리 재앙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견을 내놨다. AI로 인한 업무 자동화 때문에 일자리가 빠르게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 AI가 자리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주장이다.

6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이 생성 AI를 수용하기 시작했지만 신기술 도입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는다”며 “공상 과학 소설이 과학적 사실로 바뀌긴 했지만 경제적 사실에 이르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짚었다. 벤처기업인 오픈AI가 개발한 대화형 AI인 챗GPT가 고용 시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기엔 당분간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이코노미스트는 AI 기술에 대한 고용 시장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근거로 로봇의 사례를 들었다. 기계 팔과 같은 로봇은 수십년간 도입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일자리 대체에서는 제한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게 이 매체의 주장이다.

미국 자산운용사인 아크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산업용 로봇의 평균 가격은 2005년 6만9000달러에서 2017년 2만7000달러로 61% 하락했다. 산업용 로봇의 전세계 재고량도 2011년 100만대에서 2021년 350만대로 3.5배 늘었다. 여기까지 보면 산업계에 로봇 보급이 늘고 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산업계의 로봇 투자 규모에 주목했다. BCG컨설턴트에 따르면 2020년 전세계가 산업용 로봇에 지출한 자본 규모는 250억달러로 전세계 자본 지출의 1%를 밑돌았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성인용품에 들어가는 자본 지출보다 적은 수준이다. 이 매체는 “세계에서 로봇 도입에 가장 열성적인 한국조차도 근로자 수 대비 로봇의 도입 비율은 10 대 1 수준에 그쳤다”며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에선 이 수치가 25~40 대 1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기업의 사무 자동화 속도도 실제론 빠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존 체계를 유지하려는 기업들의 관성이 사무 자동화 시스템의 확산을 저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리서치 업체인 가트너는 “상당수 기업들이 사무 자동화를 위해 IT 컨설팅을 받는 대신 인도나 필리핀과 같은 저비용 국가에 단순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걸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리서치업체인 IDC도 “사무 자동화 소프트웨어의 세계 시장 규모는 연간 200억달러 수준으로 로봇 투자 규모보다 적은 수준”이라고 짚었다.

사람들이 신기술로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움을 갖는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19세기 초 영국에선 기계 도입에 반발하는 공장 노동자들이 기계 장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단행했다. ‘자동화(automation)’라는 단어도 세계 2차 대전 이후 산업 현장의 기계화가 대규모 실직 사태를 불러온 1950년대에 유명해진 말이다. 2013년에는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미국 노동 작업의 47%가 향후 10~20년 내에 자동화될 것”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내놓으면서 학계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AI 도입으로 인한 실직 우려보다는 기업들의 구인난이 더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 매체는 “미국의 구인 규모는 구직 규모의 2배 수준으로 역사적으로 높은 상태”라며 “제조업과 접객업 부문에서 각각 50만명, 80만명의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진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는 자동화가 오히려 너무 적게 됐다는 것”이라며 “화제가 되고 있는 최신 AI 기술들로도 상황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