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와 오피스텔이 밀집한 화곡동 전경  /사진=한경DB
빌라와 오피스텔이 밀집한 화곡동 전경 /사진=한경DB
빌라 거래량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빌라 시장이 고사 위기에 놓였다. 금리 급등으로 주택 거래 절벽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대출·청약 등 아파트 관련 규제가 잇따라 풀리고 '빌라왕 전세 사기'까지 불거지면서 빌라 수요가 자취를 감춘 영향이다.

6일 한국부동산원에 올 1월 전국 빌라(다세대·연립) 거래량은 603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3797건에 비해 56.24%(7760건) 급감했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6년 1월 이후 17년 만에 최저치다. 전국 빌라 거래량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데는 전체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서울 빌라 거래량이 급격하게 위축된 영향이 컸다. 올 1월 서울 빌라 거래량은 1700건으로 2013년 1월(1693건)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이전까지만 해도 빌라 시장은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부동산 활황기에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빌라에 실수요자들이 몰렸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정비사업 활성화 기조를 띠면서 자산가들의 투자 수요까지 빌라 시장에 집중됐다. 이 덕분에 2020~2021년엔 월별 기준 빌라 거래량이 아파트 거래량을 뛰어넘기도 했다.

하지만 올 초 정부가 대출·청약 규제를 대거 완화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환금성이 낮고 가격 탄력성이 크지 않은 빌라에 비해 아파트로 눈을 돌리는 실수요자가 많아졌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빌라 거래는 주로 전세 계약이 많았는데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어 굳이 빌라를 찾으려는 수요 자체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해 말 불거진 '빌라왕 전세 사기'가 실수요자들의 빌라 기피 현상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실제 올 들어 전세 사기가 집중된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인근 공인중개사무소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전세 대출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전세 사기나 보증 보험 사고 뉴스까지 겹치면서 빌라 전세를 피하려는 고객들이 많아졌다"며 "입지와 인프라가 좋은 신축 빌라도 섣불리 추천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빌라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면서 올 1월 전국 빌라 매매수급지수는 81.9를 나타냈다. 전월(82.5)에 비해 0.6포인트 떨어졌을 뿐 아니라 지난해 1월(97.5) 대비로는 15.6포인트 급락했다. 매매수급지수는 기준점인 100보다 지수가 낮을수록 시장에 빌라를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다는 뜻이다. 올 1월 서울 빌라 매매수급지수는 81.2로 전국 평균 보다 낮고, 강서구가 속한 서남권의 경우 73.7로 전국 최하위 수준을 나타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빌라는 청년층이나 서민들이 비싼 아파트 대신 선호하는 주거 형태였지만 최근 들어 불신의 대상으로 낙인 찍혔다"며 "빌라 전세 시장이 쪼그라들고 아파트 월세 위주로 임대차 시장이 재편되면 결국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은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