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국민의 노후자금인 연금의 투자 전략과 자산 배분을 결정하는 최종 의사결정 기구다. 투자 부문별 비중, 연도별 운용계획 등 기금 수익률을 좌우하는 운용 전략을 정한다. 위원회가 다루는 운용 기금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890조원에 이른다.
연금 운용·간병비 심의까지…양대노총이 '감 놔라 배 놔라'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이런 중차대한 업무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참여하고 있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근로자 대표 몫 3명을 양대 노총이 차지한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계 입장을 대변할 노동단체가 양대 노총 외에는 없다는 게 현실적인 문제”라며 “이런 구조에선 양대 노총이 정파적인 의견을 내더라도 다른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료·수가 결정 위원회도 참여

양대 노총은 노동 현안과 관련이 작은 정부 위원회에도 다수 참여하고 있다.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분야도 적지 않다. 2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정부 위원회 636곳을 전수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에는 나순자 민주노총 사회공공성강화위원과 신승일 한국노총 부위원장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는 건강보험 요양급여, 보험료, 수가 등 건강보험 정책 전반을 심의 의결하는 위원회다.

공공보건의료 정책을 심의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에도 양대 노총 소속 위원 2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밖에 건강검진종합계획 등을 결정하는 국가건강검진위를 비롯해 국민연금심의위 등에도 양대 노총 소속 위원이 있다.

이들에게 지급된 수당도 적지 않다. 이들은 회의 참석 1회당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35만원을 받았다. 지난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는 위원 한 명당 총 285만원을 지급했다. 국민연금기금위는 200만원, 장기요양위는 195만원을 줬다.

○정규직 중심 양대 노총이 좌지우지

노조의 정부 위원회 참여는 법이나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노동계 의견을 국가 주요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노동계는 “주요 국가 정책을 정부나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실현해야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할당된 근로자 대표 몫을 대부분 양대 노조가 독점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근로자 대비 노조 가입률은 14.2%에 그쳤다. 30인 미만 사업장 노조 조직률은 0.2% 수준이었다.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양대 노총이 전체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예컨대 매년 최저임금을 의결하는 최저임금위는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근로자 위원 9명은 민주노총(4명)과 한국노총(5명)이 독점하고 있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양대 노총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정규직 중심으로 이뤄진 단체인 만큼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비정규직 근로자 등의 목소리는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도 양대 노조 소속 위원 3명이 근로자 전체를 대변해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 관한 의견을 내고 있는 구조다.

○불법 관여한 노총 참여 제한해야

각종 불법 행위에 책임이 있는 노총의 정부 위원회 참여가 바람직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월 국토교통부의 ‘건설현장 불법행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2주 동안 전국 1494곳 현장에서 월례비 강요 등 불법행위 2070건이 신고됐다. 지난해 12월에는 10억원대 노조비를 횡령한 혐의로 진병준 전국건설산업노조 위원장이 징역 4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위원회의 인적 구성은 개별 법이나 시행령에 근거해 현실적으로 제재하기가 쉽지 않다.

정치권 관계자는 “불법을 저지른 노총의 위원회 참여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개별 법을 하나하나 고쳐야 해 제도 보완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정부 위원회에 참여하는 노동단체가 양대 노총에 국한돼 있고, 이들이 정파성이 강하다는 것이 문제”라며 “MZ 노조 등 제3의 노동단체가 활성화되면 이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양길성/곽용희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