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내놓은 반도체 보조금 지급 기준이 국내외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한국 대만 등 동맹국은 물론이고 미국 현지 언론까지 부작용을 지적하며 비판하고 나선 것. 미국이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 아우르는 ‘반도체 패권국’ 부활을 꿈꾸며 내놓은 야심작이 첫발부터 삐걱거리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은 바이든 대통령이 자초한 바나 다름없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말 520억달러(약 64조3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에 관한 지급 기준을 발표했다. 이 기준이 산업정책인지, 외교정책인지, 복지정책인지, 대선 공약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게 미국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평가다. 실제로 내용이 그렇다. 앞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 이상 지원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은 초과이익 반납(보조금의 최대 75% 한도), 고객·장비·원료 등 영업기밀 공개 등과 함께 10년간 대중 투자 금지 조건을 준수해야 한다. 또 노조가 정한 대로 임금을 지급하고, 작업 규칙을 만들고, 어린이 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등 만만찮은 부담까지 지게 된다. 대중 견제라는 외교정책 목표와 내년 대선을 겨냥한 노동·복지 정책까지 몰아넣은 ‘프랑스식 좌파 정책’이라는 게 WSJ의 비판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크게 당황하고 있다. 기업 영업기밀 공개와 초과이익 반납, 노조와의 협력 등이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해 현지 투자에 관해 다시 계산기를 두드려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미국 대만 일본 등 경쟁국들이 막대한 투자를 무기로 선두 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우리만 머뭇거릴 수도 없는 처지다.

신속한 판단과 과감한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정부는 외교력으로, 기업은 냉철한 판단으로 미국 반도체지원법 독소조항을 걸러내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방탄 논란으로 날을 새우는 국회도 하루빨리 정신 차리고 미국, 대만 등이 치고 나간 ‘반도체 시설투자 25% 세액공제’ 등에 버금가는 지원 법안을 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