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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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뒤를 이을 천재는 누구인가.’

패션계에 1년 넘게 이어져온 화두다. 루이비통 남성복 디자이너이자 예술감독 자리가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패션계의 전설이자 혁신가로 불린 흑인 최초의 루이비통 전속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는 41세의 이른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자리를 이을 사람은 해가 두 번 바뀌도록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달 15일 패션계는 또 한번 술렁였다. 루이비통의 모회사 LVMH가 “퍼렐 윌리엄스를 새로운 남성복 디렉터로 공식 임명한다”고 발표하면서다. 윌리엄스는 전문 디자이너도, 패션 학도도 아닌 ‘그래미 팝스타’. 그래미 트로피를 일곱 개나 받았지만 디자인은 한번도 배운 적 없는 그를 루이비통은 왜 아블로의 후계자로 찜했을까.

2004년 퍼렐 윌리엄스와 루이비통이 
내놓은 선글라스 ‘밀리어네어’.
2004년 퍼렐 윌리엄스와 루이비통이 내놓은 선글라스 ‘밀리어네어’.
윌리엄스는 음악적 능력만큼 뛰어난 패션 센스로 잘 알려져 있다. 루이비통과 이미 두 차례 디자인 협업을 했다. 그와 루이비통의 첫 만남은 2004년이었다. 당시 루이비통 전속 디렉터였던 마크 제이콥스는 윌리엄스와 손잡고 선글라스 컬렉션인 ‘밀리어네어’를 내놨다. 당시 선글라스 하나의 가격은 1200달러(약 150만원). 루이비통 선글라스 중에서도 비싼 가격이었지만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일회성 콜라보였던 이 선글라스는 인기가 많아 3년 뒤 더 많은 색상을 추가해 재출시되기도 했다.

윌리엄스의 패션 감각과 파급력을 확인한 루이비통은 그에게 본격적인 구애를 시작했다. 루이비통은 2008년 또다시 그와 함께 다이아몬드 반지와 팔찌 등 ‘블라종 컬렉션’을 만들었다. 다이아몬드를 들고 있는 천사 모양의 반지는 최대 5억원 이상. 그럼에도 오픈과 동시에 “없어서 못 구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윌리엄스는 루이비통과의 콜라보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명품과 패션계 스타로 올라섰다. 아디다스가 먼저 협업 제안을 하는 등 여러 패션 브랜드와 손잡았다.

2008년 퍼렐 윌리엄스가 루이비통과 함께 디자인한 ‘블라종 컬렉션’.
2008년 퍼렐 윌리엄스가 루이비통과 함께 디자인한 ‘블라종 컬렉션’.
패션계 내부에선 LVMH의 전속 디자이너 선임 발표 후 지금까지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디자인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명품의 ‘디자이너’ 자리를 침범해왔다는 것. “패션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인물이 한 브랜드의 시즌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디자인을 배우는 학도들과 현업 종사자에게 비관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쪽에선 “디자이너는 성역이 아니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브랜드의 가격과 이미지가 어떻든, 디자인은 능력 있고 시대를 잘 읽는 인물이 맡는 것이 맞다”는 게 이유다. 이 지점에서 루이비통이 윌리엄스를 선택한 이유가 더 명확해진다. 아블로는 바둑판과 모노그램 디자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침체돼 있던 루이비통을 ‘스트리트 패션’과 접목해 다시 일으켜 세운 장본인이다. 그 역시 토목공학, 건축학 전공자로 ‘기존 창작물에 3%를 변화시켜 새 디자인을 만든다’는 법칙으로 루이비통의 부활을 이끌었다. 기존 디자이너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루이비통과 나이키의 콜라보 작업을 성공시켰고, 루이비통을 ‘지루한 브랜드’에서 ‘젊고 힙한 브랜드’로 바꿔놓았다.

윌리엄스는 여전히 짙게 남아 있는 ‘아블로 루이비통’의 색을 얼마큼 받아들이고, 얼마큼 지워낼까. 그의 첫 컬렉션은 오는 6월 파리에서 세상에 공개된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