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노스, 학술지에 나타난 '주체' 의미변경 추적
'무역 촉진제→적대세력 방벽' 무게중심 오락가락
"김정은 무역정책, '하노이 노딜' 뒤 급격히 보수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무역정책이 북미대화 교착과 함께 급격히 폐쇄적으로 변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16일(현지시간) 발간한 보고서 '김정은의 경제정책 이해하기: 주체와 해외통상'에 이 같은 연구결과를 담았다.

38노스는 북한 계간 학술지 '경제연구' 보고서에서 묘사되는 주체사상의 의미가 시간에 따라 변해간 점을 주목해 이를 김 위원장의 통상정책 변화로 진단했다.

경제연구에 실리는 보고서는 단순한 학문적 논의가 아니라 북한 당국의 정책 방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38노스는 북한이 광범위한 경제개혁 의제가 쏟아지던 김정은 집권기 초기이던 2014년 주체사상의 개념을 확장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외국과의 적극적 통상은 북한의 최고 통치이념으로 자급자족 경제를 강조해온 주체사상과 상충할 수 있기 때문으로 관측됐다.

경제연구에 2014년 실린 한 보고서는 "주체가 그렇게 구속적인 것은 아니다"며 무역 확대와 타협점을 찾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는 "주체는 외부의 경제와 거래 때 일방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불공정한 국제 경제관계에 반대하고 모든 국가가 공정한 입장에서 서로 이익을 보도록 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이 보고서는 주체 지향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각국의 실제 여건에 따라 다른 국가와의 교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혀 주체사상 적용에 유연성까지 부여했다.

"김정은 무역정책, '하노이 노딜' 뒤 급격히 보수화"
보고서는 "해외 경제관계에서 주체 지향적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쇄국정책이 아니고 외국과의 경제관계 발전을 막는 것도 아니다"며 국익이 되는 선진기술이라면 자본주의 국가의 산물이라도 수용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경제연구에 실린 2017년 보고서에서는 선대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훈시라며 주체사상이 무역을 뒷받침하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인용해 "자급 국가경제는 결코 닫힌 경제가 아니고 무역을 배제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급 국가경제를 구축한다고 하더라도 수만 가지 종류의 물품을 생산할 수 없고 생산할 필요도 없다"고 썼다.

그러나 경제연구에 나타난 이 같은 개방적 통상정책은 2020년이 되자 급격히 바뀌었다.

38노스는 이 시기 경제연구에서 주체사상은 무역확대를 위한 개념이 아닌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보루의 일부가 됐다고 지적했다.

한 보고서는 "우리가 해외경제발전 전략을 제대로 세우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만들어내려면 주체 지향적 자세에서 오는 독립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과 관련한 우리 당의 정책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적대적 세력들이 우리를 고립시키고 무너뜨리려고 집요하게 제재와 봉쇄 작전에 매달리는 현재 여건에서 우리가 혁명적 자세를 포기하면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잃는다"고 강조했다.

38노스는 북한의 통상정책 기조가 급변한 원인으로 베트남 하노이에서 2019년 2월에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을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경제적 보상을 내걸고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비핵화를 두고 담판을 벌였다.

그러나 회담에서는 아무 합의가 도출되지 않고 북미 비핵화 대화는 그대로 교착에 빠졌다.

38노스는 "하노이 정상회담이 실패한 뒤 북한은 대외정책, 무역을 비롯한 전 분야에서 보수적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경제연구에 실린 2020년 보고서는 그 많은 신호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적 발언, 정치, 경제, 사회, 대외정책 문제에 대한 북한 매체 보도를 보면 경제와 통상 등 북한의 정책이 가까운 미래에 계속 보수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관측된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무역정책, '하노이 노딜' 뒤 급격히 보수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