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안양 대표 시인 문학정신 기리겠다"…출생지 인근에 건립 추진
시민사회단체 "꼭 개인이름 붙여야 하나…의견 수렴해 재검토하라"

경기 안양시가 안양 출신인 고 김대규 시인의 이름을 딴 문학관 건립사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김대규 시인은 1942년 안양에서 태어나 2018년 작고했으며, '영의 유형', '흙의 사상', '시인의 편지', '사랑의 팡세'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현장in] 안양 출신 김대규 시인 이름 딴 문학관 건립 놓고 '시끌'
또 안양시민헌정비 비문, 안양 현충탑 진혼시, 독립유공자 기념탑 헌시 등 수많은 비문 작품을 남겼고, 그가 작사한 여러 작품이 노래로 만들어져 불리고 있을 정도로 '안양 문학과 예술의 상징' 같은 존재로 평가된다.

16일 연합뉴스의 취재를 종합하면 안양시는 2021년 1월 김대규문학관을 2023년까지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시인이 태어난 안양3동 삼덕도서관 옆에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845㎡ 규모로 문학관을 조성해 작품 전시공간과 창작공간, 다양한 문학서적을 접하는 작은 도서관 및 열람실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당시 민선 7기 최대호 안양시장은 "안양의 대표 시인인 김대규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지역주민들의 문학체험 수요를 맞추는 주민친화형 문화공간을 만들겠다"며 문학관 건립에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김대규문학관 건립사업이 그해 10월 경기도 지방재정투자심사를 통과하자 안양시는 39억여원을 투입해 2024년 2월 착공해 2025년 8월 준공할 구체적인 목표도 설정했다.

그러나 김 시인 아버지의 친일 논란이 제기되자 안양시 공무원노조가 반발하면서 사업은 잠시 중단됐다.

친일 논란은 그의 아버지가 친일반민족행위 명단 등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 나중에 확인돼 일단락됐다.

잠시 잠잠해졌던 김대규문학관 건립 관련 논란은 최근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개인 이름을 딴 문학관 건립 추진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다시 불거지고 있다.

안양여성의전화·안양YMCA 등 1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안양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 14일 논평을 내고 "김대규문학관으로 바꿔치기하려는 지역문학관 건립사업, 시민에게 먼저 묻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연대회의는 "지역문학관 건립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한 사람을 영웅시하여 개인의 이름을 붙인 문학관을 지금 꼭 건립해야 하는지 점검해야 한다"며 "시민 모두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해 시민을 위한 문학관이나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길 바란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광명 기형도문학관, 경기 광주 만해기념관, 서울 윤동주문학관 등 유명 문학인의 이름을 붙인 사례를 언급하면서 "적어도 개인의 이름을 딴 문학관을 건립한다면, 그것도 시민의 세금으로 지어지는 것이라면 세금을 낸 시민들 스스로 추동해 건립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대회의는 시민 공론화 과정을 통한 충분한 숙의, 공정한 연구용역을 통한 당위성 확보, 의회 승인 등을 거쳐 김대규문학관 설립을 재검토하라고 안양시에 요구했다.

안양시는 문학관 건립 추진은 맞지만 김대규문학관으로 명칭을 확정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김대규 시인의 유족과 김대규문학관건립추진위원회는 시인의 이름을 딴 문학관을 원하고 있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시민사회단체도 있기 때문에 여러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해 시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향이 결정되면 올해 안에 도시계획을 변경한 뒤 내년에 설계에 들어가 2~3년 공사 기간을 거쳐 2026년께 문학관을 완공하는 것이 목표"라며 "물가 인상 등으로 49억원으로 늘어난 사업비는 경기도 지원사업 등을 통해 도비 50%를 지원받아 충당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장in] 안양 출신 김대규 시인 이름 딴 문학관 건립 놓고 '시끌'
앞서 지난해 12월 26일 안양시의 지원을 받은 안양예총은 심포지엄을 열어 김대규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조명한 바 있다.

한편, 국내에서는 2012년 8월 강원도 화천군에 이외수문학관이 개관하면서 생존 작가 문학관 건립 열풍이 불었다.

유명 문인과의 연고를 토대로 지역 이미지를 높이려고 지방자치단체가 작가들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문인 모시기' 경쟁이 과열되면서 부작용도 발생했다.

수원시가 안성시에 20여 년을 살던 고은 시인에게 주거지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고은문학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었고, 2017년 9월에는 경북 예천군이 안도현문학관을 지으려 하자 작가가 자신의 문학관 건립을 보이콧하는 일도 벌어진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