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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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 빠졌을 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평생토록 잊히지 않아 지키고 산다. 초등학교 다닐 때다. 정확히는 우물 파는 공사장에 떨어졌다. 외갓집에서 아버지 담배 심부름을 하고 대문을 들어서자 마당 한복판에서 소리가 들려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깊게 파고들어 간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깨어나 안방에 누워있는 나를 보고 놀랐다. 분명히 우물 파는 공사현장을 들여다보려 한 것 같은데 방에 누워있으니 말이다. 떨어진 거는 기억나지 않았다. 안에서 땅 파던 인부에게 떨어져 살았다고 했다. 그 인부가 더 놀라 옆방에 아직 누워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화난 외삼촌은 거의 다 파 들어간 우물을 메워버리라고 했다. 야단칠 게 뻔한 아버지를 얼른 쳐다봤으나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재를 하나 넘는 5킬로 남짓 되는 길을 걸어 돌아오는 두 시간 내내 맘을 졸였다. 언제 야단맞을지 몰라서였다. 고개를 넘어 집이 내려다보이는 데서 앉아 쉴 때 아버지가 느닷없이 오늘 참 잘했다. 그런 호기심을 평생 잃지 마라. 궁금하면 그렇게 꼭 가서 직접 봐라라고 했다. 태어나 처음 듣는 칭찬이기도 했지만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있던 터여서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지팡이 잡은 손을 바꿔 오른손으로 내 머리를 가볍게 두어 차례 두들겨줬다. 이어서 아버지가 지팡이로 풀을 툭툭 치며 가르쳐준 고사성어가 타초경사(打草驚蛇)’. 나중에 커서야 자세히 알았지만, 그날 어둑해질 때까지 길게 말씀하신 거는 유독 기억이 새롭다. 타초경사는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이다. ()을 징계해 갑()을 깨우치는 것을 비유하거나 변죽을 울려 적의 정체를 드러나게 하거나 공연히 문제를 일으켜 화를 자초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당()나라 수필집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나오는 이야기다. 당도현(當涂縣)에 온갖 명목으로 세금을 거둬 사복을 채운 현령 왕로(王魯)가 있었다. 부하들 모두 그를 흉내 내 가렴주구에 여념이 없었다. 백성이 연명해 그의 휘하 관원을 뇌물수뢰죄로 고발했다. 거기에는 왕로의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주부(主簿)의 고발도 들어 있었다. 주부의 죄행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과 관련된 것이어서 그는 자신의 불법행위도 드러날까 봐 겁이 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심 끝에 고발장 위에 이같이 판결문을 썼다. ‘너희들이 비록 풀밭을 건드렸지만 이미 나는 놀란 뱀과 같다[汝雖打草 吾已驚蛇]’라고 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고 한다. 백성이 자기 부하들의 비리를 고발한 것은 곧 우회적으로 자신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으로 여겨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을을 징계해 갑을 각성하게 하려 한 백성의 의도는 충분히 달성되었다.

원문은 저렇다. 아버지는 그날 현령의 처신은 본받을 만하다며 말을 보탰다. “풀을 두드리는 소리를 놓치지 말고 들어라. 모든 위험에는 신호가 있고 소리가 있다. 귀 기울이고 궁금해하고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고 아버지는 설명했다. 그날 이후에도 여러 번 말씀하시며 그런 소리를 듣는 게 감수성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희미해진다. 그런 감수성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의문을 품고 알고 싶어 하고 배우려는 심성과 자세를 낳는다라고 구체적으로 짚어주셨다.

고사성어 때문에 알게 된 토머스 칼라일은 본다고 보이는 게 아니고 듣는다고 들리는 게 아니다. 관심을 가진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게 된다. 호기심과 관심은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라고 했다. 설날 집에 온 손녀에게 사위가 “1층이니까 맘껏 뛰어라라고 말할 때 퍼뜩 떠올랐다. 이제 걸음마를 막 뗀 손녀가 뛰면 얼마나 뛰길래 층간소음 때문에 아랫집에서 몇 번째 싫은 소리를 들었을까 싶다. 저맘때 궁금한 거 못 참아 뛰어가서 보고 싶을 텐데 그걸 막는 부모의 얘기를 들으니 은근히 화났다. 저 때부터 그토록 소중한 감수성을 부모가 나서서 억지로 죽여야 하니 말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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