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전산업을 이끌어 갈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의 세부 구조 및 심층방어 설계안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민간 항공기의 충돌까지 견디는 발전소 외벽을 포함해 5단계에 걸쳐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사고 위험을 ‘10억 년에 한 번’ 수준으로 크게 낮췄다는 것이 i-SMR 사업단의 설명이다.
베일 벗은 혁신형 원전 'SMR'…"사고 위험 10억년에 한 번 수준"
17일 서울 세종대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연 ‘SMR 안전규제 방향 마련을 위한 전문가 세미나’에서 i-SMR 사업단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i-SMR 심층방어 설계안’을 공개했다. 그동안 국회 등에서 i-SMR의 대략적인 개념도가 공개된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심층방어 설계안과 목표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심층방어 설계안은 원안위 등 규제기관이 다단계로 검증한다. 올해 안에 포괄적 규제 요건이 마련되면 사업단은 내년부터 표준설계에 들어간다. 2028년 검증 및 인허가를 마치고 최종 인가를 받을 예정이다.

설계안에 따르면 i-SMR은 전기 출력 기준 170㎿ 노심을 가진 일체형 원자로 4개로 구성될 예정이다. 냉각수 내 붕산을 없애 폐기물 발생량을 줄이고 노심 안전성을 높이는 ‘무붕산 운전’ 등 신기술 등을 도입한다. 방사성 물질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한 핵연료 피복재, 원자로 건물 내·외벽 등 5중 방벽을 갖춘다.

원자로는 지표면의 흙을 30m가량 파 내려간 뒤 나오는 단단한 암반층 위에 건설한다. 노심 온도가 설계 온도보다 15% 이상 올라도 견딜 수 있도록 하고 출력 대비 두 배 이상 많은 냉각수를 보유하도록 할 예정이다.

각 원자로는 30㎝ 이상 두꺼운 철제형 격납용기로 밀폐한다. 대기압의 최대 40배 수준 고압에도 견딜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현행 상용 원전의 여덟 배 수준이다. 만약의 사태에도 내부 진공을 유지하며 방사성 물질의 외부 방출을 막고 발화 및 폭발 현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원자로 위에는 민간 항공기 충돌도 견딜 수 있는 발전소 건물을 짓는다. 전체 발전소 부지는 축구장 넓이 정도에 불과하다.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을 때 사람의 접근을 금지하는 면적을 발전소 부지 내부에 그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원전 사고 시 반경 30㎞ 이내의 주민을 대피시키는 것과 비교해 차이가 크다.

모든 안전 계통은 전기 공급이 끊겨도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외부 전력이 필요한 펌프를 이용해 냉각재를 순환시켜야 하는 대형 상업 원전과 달리 자연대류를 통해 냉각재를 순환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한곤 i-SMR 사업단장은 “모든 인간은 실수할 수 있고 모든 기계는 고장 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설계가 심층방어 설계”라며 “i-SMR의 사고 위험은 10억 년에 한 번에 불과할 정도”라고 했다. 한국이 체코에 수출하는 최신형 상업용 원자로 APR1000 사고 확률의 1000분의 1 이하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SMR은 출력이 대형 상업 원전의 5분의 1 수준인 차세대 소형 원전이다. 원전의 핵심 기기인 원자로,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을 하나의 용기로 모듈화했다. 대형 상업 원전에 비해 안전성이 높고 입지 선정이 자유롭다. 세계 SMR 시장이 2035년 63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SMR의 노형을 개발하는 ‘i-SMR 개발사업’에 올해부터 2028년까지 총 3992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한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은 80종 이상의 SMR 노형 개발을 추진하며 각축을 벌이고 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