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美 FDA의 치매 신약 허가에서 배울 점
지난 7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알츠하이머 치료제 ‘레켐비’가 바이오업계에서 화제다. 불치병으로 불리던 알츠하이머 정복에 새로운 청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FDA가 알츠하이머 치료제 허가를 내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21년 허가를 받은 아두헬름이 첫 치료제다. 이전까지는 알츠하이머 진행을 지연하는 약만 쓰였다. 아두헬름이 병을 낫게 하는 약으로 처음 허가받은 셈이다.

하지만 FDA는 내홍에 시달렸다. 아두헬름의 효능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는데 허가 결정을 했다는 이유로 내부 갈등을 빚었다. 승인 과정에 비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아두헬름은 효능이 뚜렷하지 않아 의료계에서 사실상 퇴출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런 까닭에 제약업계에선 레켐비의 허가 여부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레켐비 개발사는 아두헬름을 개발한 바이오젠과 에자이다.

레켐비에 대한 시장 반응은 아두헬름과 다르다. 의료 현장에선 드디어 쓸만한 약이 나왔다는 반응이 나온다. FDA 승인을 기다리는 알츠하이머 신약 후보물질도 줄을 섰다. 하지만 제약업계의 평가는 시장과 조금 다르다. 아두헬름이 잇따른 실패로 잔뜩 움츠러들었던 알츠하이머 신약 연구개발에 불쏘시개가 됐다는 평가에서다. “아두헬름이 문제가 많은 약이긴 하지만 FDA 승인을 받으면서 ‘이 약보다 좋으면 된다’는 일종의 업계 표준이 됐다”(묵인희 국가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장)는 것이다. 아두헬름보다 더 좋은 약을 개발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호를 FDA가 줬다는 얘기다.

레켐비 허가를 두고 국내에선 허가당국의 역할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효능 논란에도 불구하고 환자에게 이익이 되는 신약이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공격적 정책을 펴온 FDA가 레켐비의 일등 공신이라는 판단에서다. 레켐비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알츠하이머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줄이는 효과는 확인됐지만 인지 기능을 확연히 개선하는 효과는 입증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FDA는 효능 입증을 통해 허가를 다시 받으라는 조건을 달았다.

레켐비가 한국에서 허가 문턱을 넘으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허송세월만 했을 가능성이 크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신약 허가 문턱이 높기 때문이다. 2011년만 해도 세계 첫 줄기세포치료제 허가를 내줄 만큼 적극적이던 식약처는 2019년 인보사 허가 취소를 내린 이후 신약 승인에 소극적으로 변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부실 심사의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오죽하면 “FDA가 승인해준 비슷한 약이 없으면 식약처 승인을 받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환자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FDA의 허가 정책을 되새겨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