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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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하반기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 한 달 넘게 승강기 운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대부분 여성인 급식 조리원들은 국과 반찬을 담은 무거운 통을 1층에서 5층까지 2인1조로 옮겨야 했다. 엘리베이터는 멀쩡하게 작동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방화능력 인증이 몇 달 지체되면서 승강기를 설치하고도 운행을 못 했던 것이다.

"멀쩡한 엘리베이터 못 타게 해…5층까지 반찬통 들고 가 배식"
8일 승강기업계에 따르면 전국 학교 수십 곳이 승강기 설치 및 교체 공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강력한 승강기 규제 탓이다. 안전을 위한 조치라지만 승강기를 설치해놓고도 몇 달씩 방치하는 사례가 많다.

국내 모든 승강기는 행정안전부 산하 한국승강기안전공단으로부터 부품 단계에서 인증을 받는다. 이를 조립한 상태에서 또 인증받고, 설치 검사를 다시 한번 더 받는다. 모두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이지만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지적이다. 유럽의 인증 대상 승강기 부품 품목은 9가지인 데 비해 한국은 20가지에 달한다.

인증 기간도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일쑤다. 건기연의 방화능력 인증을 추가로 받는 데 6개월에서 1년 가까이 걸린다. 인증의 법정 처리기간은 25일이지만 지켜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겨울 방학을 맞아 승강기를 설치 및 교체하려는 학교들은 비상이 걸렸다. 보통 한 달이면 설치가 가능하지만, 방화능력 인증이 늦어지면서 개학 후에도 승강기 정상 운행을 장담할 수 없어서다. 승강기 제작을 끝내고도 방화능력 인증을 1년가량 기다리거나, 인증이 늦어진 탓에 건설사에 지체상금을 물고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경우도 있다.

부담은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모델로 설계가 바뀐 것이 없는 승강기도 매번 설치할 때마다 대당 수백만원의 설계심사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은 지난해 8월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규제개혁 대토론회를 비롯해 여러 차례 정부에 건의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최강진 조합 이사장은 “국내 발생 승강기 사고 중 제조 결함 사고나 화재 유발 사고가 거의 없었음에도 정부는 사고가 나기만 하면 승강기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공무원들은 계속 회의만 할 뿐 규제개혁이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승강기산업 매출은 4조5000억원으로 중국 미국 인도에 이어 세계 4위 규모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