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막해 내년 3월 5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물랑루즈!’.  CJ ENM 제공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막해 내년 3월 5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물랑루즈!’. CJ ENM 제공
미국 브로드웨이 화제의 뮤지컬 ‘물랑루즈!’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가장 화제가 된 건 티켓 가격이었다. VIP석 표값이 18만원으로 한국어 공연 기준으로 역대 최고가다. 가장 저렴한 A석 가격조차 9만원에 달하자 ‘너무하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가격 불만은 크게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 사이에서 ‘돈값 한다’는 반응이 많아지면서다. 화려한 무대 장치와 배우들의 눈부신 의상, 익숙한 팝송 수십 개로 이뤄진 넘버(노래) 등을 보고 듣고 즐기다 보면 어느새 비싼 티켓 가격을 잊게 된다는 얘기였다.

와인병 소품 하나에 3000만원

뮤지컬의 배경은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지금도 영업하는 133년 역사의 카바레 ‘물랑루즈’. 수많은 유명 연주자와 가수 그리고 댄서들이 거쳐간 무대이자 화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공간이다. 작품은 물랑루즈 클럽의 스타 사틴과 무명의 젊은 작곡가 크리스티안의 사랑 이야기다. 2001년 니콜 키드먼, 이완 맥그리거 등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2800만달러(약 350억원)를 들여 만들었다. 뮤지컬계에서 권위 있는 토니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10개 부문을 휩쓸었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의 ‘물랑루즈!’ 공연장에 들어서면 마치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클럽으로 순간이동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당시 파리에서 가장 화려했던 클럽 내부를 재현하기 위해 붉은색 조명으로 무대와 객석 전체를 감쌌다. 관객들 머리 위 천장엔 샹들리에까지 달았다. 프로듀서를 맡은 예주열 CJ ENM 공연사업부장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공연의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 영국 호주 등 해외 제작소에서 직접 제작한 세트를 들여왔다”며 “연출 음악 안무 조명 음향 등 모든 스태프의 팀장급 인력도 현지에서 초빙했다”고 말했다.

작품의 여주인공 사틴을 맡은 배우 아이비가 “돈 냄새 나는 뮤지컬”이라고 농담을 던졌는데 빈말이 아니었다. 사소해 보이는 소품 하나도 해외에서 직접 공수해온 터라 고가를 자랑한다. 와인병 하나의 가격이 3000만원이다. 몬로스 공작의 어깨 위에 불과 몇 초 얹혔다 지나가는 작은 인형 하나도 70만원이다. 배우들 의상도 모두 해외 디자이너를 통해 맞춤 제작했다. 주인공 사틴이 극 중 갈아입는 의상만 총 16벌. 사틴이 넘버 ‘다이아몬드는 영원해’를 부르며 무대 위에 처음 등장할 때 입고 나오는 옷은 말 그대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도록 만들어졌다.

70여 개 히트송을 ‘매시업’한 넘버

빛나는 건 배우들도 마찬가지. 크리스티안을 연기하는 배우 홍광호 이충주와 사틴 역할의 김지우 아이비 등 주연급 스타 배우뿐만이 아니다. 앙상블이 난도 높은 군무를 칼같이 소화할 때마다 짜릿한 쾌감이 든다. 특히 2막을 여는 ‘백스테이지 로맨스’ 장면이 압권이다. 앙상블은 장미꽃 몇 송이를 돋보이게 하는 안개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화려한 장미꽃 여러 개를 엮어 만든 큰 꽃다발을 연상케 한다.

익숙한 팝송 70여 개를 편곡해 지은 넘버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돈나 비욘세 아델 리한나 등 세계적인 팝 가수의 히트곡을 매시업(두 가지 이상의 노래를 합친 것)한 넘버들로 이뤄졌다. 여러 히트곡이 이질적이지 않게 ‘화학적 결합’을 통해 수준 높은 넘버로 재탄생했다.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이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다. 한국어 가사로의 번역도 어색하지 않다.

볼거리와 쇼를 강조한 뮤지컬로 드라마적 요소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흥겨운 노래와 춤을 즐기고 싶은 관객들이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공연은 내년 3월 5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