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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집중탐구


멈춰선 전기료에 한국전력 주가·실적도 부진
해답은 '전기 요금 현실화'…인플레 때문에 쉽지 않아

공사채 발행 한도 늘리나…정 안되면 장기 CP 발행도
금융비용 증가 등 경영 악순환 불가피…내년도 적자 예상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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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한전) 손익계산서를 보면 조(兆) 단위 숫자가 눈에 가장 먼저 띕니다. 2020년에는 연결 기준 4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작년에는 5조8000억원의 적자로 돌아섰죠. 상장 회사임에도 한전의 우선순위는 주주가치가 아닌 가계 부담 경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책 등 외부 요인으로 회사의 실적은 해마다 천차만별이죠.

작년에 큰 손실을 낸 한전은 최근 운영 자금이 부족해지자 시장에서 차입금을 늘리고 공사채 발행을 한도까지 끌어 쓰고 있습니다. 외부에선 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계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한전은 시장에서 우량 주식으로 불립니다.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한전 주가는 오를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시장에선 한전이 올해 31조원의 영업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는 작년 적자보다 5배 커진 규모입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 한전 주가는 오르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이 내년에는 흑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전기료 인상'만이 살길…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한전의 적자 원인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급등한 원자재 가격을 전력 판매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에너지 가격은 급등했는데 수년간 요금 동결이 이어지면서 유례없는 적자 행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전기 요금 인상'이 필수적이지만, 고물가 상황에서 전기료 인상은 정부에겐 큰 부담이 됩니다. 사실상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한전이 대신 짊어지고 있는 것.

사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한전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했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996년부터 1998년까지의 매해 마지막 거래일 기준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위 자리는 변함없이 한전이 차지했습니다. 지금의 삼성전자 위상이 당시엔 한전이었던 셈입니다.

잘 나가던 한전은 지금 유가증권시장 내 시총 순위는 23위입니다. 1996년 당시 유가증권시장 내 상장 기업 수가 900여개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높은 위치에 있다고 평가할 순 있으나 시총을 비교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전이 주식시장에서 지금의 삼성전자와 같은 위상을 갖던 1996년 말 회사 시총은 15조4400원이었죠. 26년이 흐른 2022년 12월26일 기준 시총은 13조9300억원으로 9.7%(1조5100억원) 감소했습니다. 그 사이 3조1900억원이었던 삼성전자(1996년 말 기준 시총 3위) 시총은 345조6500원으로 108배 넘게 증가했죠.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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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한전 주가는 오를 것'이란 전망이 엇갈린 것이죠. 그동안 한전이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은 이유는 매출 구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전은 예나 지금이나 철저한 내수 기업입니다. 해외에서 원자력발전(원전) 사업을 수주해 매출을 올리기도 하지만 국내 기업과 가계 등에 전기를 공급해 거두는 수익이 대부분입니다. 이는 곧 국내 전기 수요가 한전의 매출 성장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는 의미죠.

최근 몇 년간 한전이 고전하는 이유는 탈(脫)원전 정책과 전기료 동결 때문입니다. 탈원전이 가속화할수록 결국 전기요금 인상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도 전기료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죠. 한전의 2015년부터 작년까지 영업이익(연결 기준)을 살펴보면 11조3000원→12조→4조9000억원→-2000억원→-1조2000억원→4조원→-5조8000억원으로 나타납니다. 2017년부터(2020년 제외·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제유가 하락 효과) 적자를 기록하더니 작년에는 5조원, 올해는 30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보고 있죠.

이 기간 부채비율도 157%→143%→149%→160%→186%→187%→223%로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탈원전 정책과 함께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는 사이 한전의 재무 상황은 악화된 것이죠.

최근 석달새 한전 주가가 30% 넘게 급등한 배경에는 전기료 인상 논의가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 폐기와 함께 전기료를 올릴 것이란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된 것.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전과 산업부가 책정한 내년 전기 요금 인상 적정액은 킬로와트시(kWh)당 51.6원인데, 이는 올해 전기 요금 총인상액(kWh당 19.3원)의 약 2.7배에 달합니다. 오는 2026년까지 누적 적자 해소 등 한전 경영 정상화를 위해선 최소한 인상안이란 평가입니다. 통상 전기요금 1kWh당 1원을 올리면 연간 5000억원가량의 한전 매출이 증가합니다.

관건은 적자 해소를 위해 한전과 산업부가 제시한 kWh당 51.6원 인상 요인이 이번에 얼마나 적용될지 여부입니다. 시장에선 20원대를 반영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고 있죠. 당장 전기료만 올라도 물가가 크게 뛸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주가가 지속해서 오르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NH투자증권은 내년 영업손실은 상반기 12조원, 하반기 2조원으로 총 14조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올해 예상 영업손실의 절반 수준이죠. 여기서 원자재 가격이 다시 급등하거나, 전기료 인상 반영이 늦어질 경우 실적은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말 결정되는 전기요금은 영업적자를 해소할 만한 수준으로 인상되기는 어렵다"며 "내년 기준연료비는 kWh당 50원 이상 인상돼야 하지만, kWh 당 최대 25원까지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내년 한전이 일부 손실 폭을 줄겠으나 적자는 계속될 것이란 분석이죠.

내년에도 대규모 적자 지속…한전채 발행 여부에 관심

과거처럼 경제성장률이 두 자릿수 대를 보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전의 성장 전략은 전기요금 현실화밖엔 없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전기요금 조정폭을 물가 인상에 예민한 정부가 승인한다는 점에서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한 성장 전략을 추진하기도 어렵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한때 우량주로 평가받던 한전이 최근 몇 년간 성장성이 정체됐고, 적자 규모까지 커지면서 재무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면서 "한전이 정상화되기 위해선 큰 폭의 전기료 인상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인플레이션 등 고물가 상황에서 전기료를 큰 폭으로 올릴지는 의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원자재 가격 등 매수 타이밍을 찾기에는 아직 변수가 너무 많다"고 말했습니다.
[마켓PRO] 한때 잘나가던 '한국전력' 어쩌다 이지경 됐나…우량주 명성 되찾을까
한전의 경우 상장사들이 주가 부양을 위해 택하는 배당 확대와 자기주식 매입·소각 등을 펼치기도 쉽지 않습니다. 수익이 안정적으로 일정하게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관성이 중요한 배당정책을 세우는 건 적절치 않기 때문이죠. 당초 밝힌 규모와 다르게 배당했을 경우 오히려 투자자 신뢰를 잃을 수 있습니다.

결국 내년에도 외부에서의 자금 조달로 회사를 운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 한전의 공사채(한전채) 발행 한도를 최대 6배까지 늘리는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이 지난 15일 소관 상임위원회 소위를 통과했죠.

만약 이 개정안이 최종적으로 통과되지 않을 시 장기 기업어음(CP)을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경우 금융비용이 늘어나 경영에 악순환이 불가피하단 분석도 나오죠.

업계 한 관계자는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한전은 디폴트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체조달 수단을 찾아야 하는데, 만기가 1년 이상인 CP를 발행할 것으로 본다"면서 "CP는 공사채보다 조달 비용이 높고, 이자율도 높게 형성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전력 프로필(12월26일 종가기준)
현재 주가: 2만1700원
적정주가: 2만4300원(최근 3개월 내 증권사 평균 목표가)
올해와 내년 예상 영업적자 컨센서스: 31조1855억원, 11조9000억원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