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이 국교인 몰타에서 총리실 앞 계단에 대형 신생아 사진이 내걸리고, 수천 명의 시민이 가두 행진에 나섰다.

4일(현지시간) 몰타 일간지 타임스오브몰타에 따르면 정부가 낙태 금지법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수천 명의 시민은 몰타 수도 발레타 거리로 나와 정부에 낙태 금지법 개정 중단을 촉구했다.

시위대는 '낙태를 몰타에서 몰아내자',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자' 등의 슬로건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총리실에서 법원까지 행진하며 "낙태에는 노(no), 생명에는 예스(yes)"를 연호했다.

지난주 크리스 펀 몰타 보건장관이 낙태 금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것으로, 주최 측은 약 2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인구의 98%가 가톨릭 신자인 몰타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유일하게 법적으로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도 예외는 없다.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은 최대 징역 3년 형, 낙태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최대 4년 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개정안은 임신부의 생명과 건강이 심각한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될 때 낙태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반대 측에서는 개정안에 통과되면 낙태가 무분별하게 이뤄질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최근 설문조사에서 몰타 국민의 61.8%가 낙태 금지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몰타 정부가 낙태 금지법 개정에 나선 데에는 미국 관광객 안드레아 프루덴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올여름 몰타로 태교 여행을 떠났던 임신부 프로덴테는 여행 중 자궁 출혈을 겪었지만, 몰타에서 낙태 수술을 할 수 없어 스페인으로 긴급 이송됐다.

이 같은 소식은 전 세계적인 논란으로 번졌고, 낙태 금지법 개정을 추동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낙태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국가는 몰타를 비롯해 안도라, 리히텐슈타인, 폴란드, 바티칸시국까지 5개국뿐이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