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기술 중심 대학 설립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미국의 미래 농부들'
혁신기술 쏟아내는 10대들
농촌 고령화 해답 제시
김보라 문화부 차장
네브래스카주와 아이오와주 등에서 농부들을 만나면 이런 생각은 완전히 사라진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4명 중 1명은 농민이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진짜 농부’ 대부분은 5~6대째 이어 농부의 길을 택한 사람들. 이들은 하나같이 ‘농업이 미국을 만들었고, 지금도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지키는 중심에 농업이 있으며, 앞으로도 농업이 미국의 핵심 산업이 될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을 갖고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많은 청년이 미국의 농촌에서 미래를 찾고 있다.
미국의 역사가 그랬다. 미국의 산업은 19세기 말부터 수직 성장했고, 그 과정에 농업이 있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을 끝내고 노예를 해방한 인물로도 유명하지만, 위대한 업적 중 하나엔 ‘모릴법’이 있다. 1862년 링컨이 승인한 모릴법의 원래 명칭은 ‘모릴 토지 단과대학 법안’. 미국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제도이자 지금의 미국 대학 시스템을 만든 법이기도 하다. 링컨이 이끄는 연방정부는 국가 소유의 땅 3만에이커(약 1억2000만㎡)씩을 각 주에 기부하고, 땅을 기부받은 주는 토지를 팔아 대학을 짓도록 했다. 아이오와, 캔자스, 미시간, 미네소타, 미주리,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버몬트, 위스콘신 등 9개 주에서 주립대가 그렇게 탄생했다. 뉴욕주 코넬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두 개의 사립대, 미국 남부에 흑인들을 위한 17개 단과대 등 1929년까지 미국의 모든 주에 106개 주립대가 설립됐다.
더 중요한 건 이들이 뭘 가르쳤느냐다. 교양 위주의 유럽식 시스템 대신 당장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농업과 농사에 필요한 기계공학 위주로 교육하도록 했다. 먹고 살기 위해 땅을 택했던 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는 유일한 방법은 교육과 기술뿐이라는 것을 100년 전 링컨은 알고 있었다. ‘공부하는 농업’으로 나라를 일으킨 미국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전체 토지의 약 40%를 농업에 할애하고, 수많은 농기계 회사와 농업 관련 회사가 각 주의 대학들과 ‘농업의 미래’를 함께 고민한다. 그 결과 농업 수출액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농촌 고령화와 승계 문제에 대한 해답도 퍽 인상적이다. ‘미국의 미래 농부들(FFA·Future Farmers of America)’이라는 비영리단체가 그렇다. 1928년 출범한 이 단체는 교육으로 미래 청년농을 육성하는 학생 조직이다. 미국 내에서 가장 크다. 지금까지 800만 명이 넘는 청소년(12~21세)이 멤버로 활동했고, 약 70만 명의 중·고생이 회원이다. 최신 농업 기술을 가르치는 교사만 1만3000명. 이들은 토양화학, 생물학 등 이론 교육은 물론 마케팅과 경영 수업도 한다. 전문학교가 아니어도 농업 관련 교과목을 가르치는 모든 공립학교는 FFA의 지부로 공인받는다. 8995개 학교가 등록했다. 의사, 정치인, 예술가 등 다른 직업을 꿈꾸는 아이들이어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경험을 이어 대학에서도 농업을 전공한 학생은 후계자가 필요한 농부와 바로 연결된다. 실전 노하우를 전수하고 저금리로 땅과 농기계를 빌려 쉽게 정착할 수 있다.
이들의 성과는 놀랍다. FFA의 장학금을 받은 학생 중 75%가 농업이나 관련업에 종사한다. 매년 농업 분야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겨뤄 ‘스타 농부’를 선발하는 전국구 콘퍼런스를 연다. 아프리카코끼리를 보존 관리하는 최적의 엔지니어링 기술, 전통적 매사냥법에서 영감을 받아 멸종위기 동물의 개체 수를 유지하는 방법을 연구하기도 한다. 농촌 재해 지역을 찾아가 돕거나 지역 식량 문제도 해결한다. 농업의 본질이 인류의 생존은 물론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일찌감치 깨달은 결과다. FFA의 회원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산업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일을 해내고 있다.”